마스크가 방해하지만 요즘은 꽃향기가 반갑기만 하다. 더워진 공기에 향기가 더 진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장미향이 담장을 휘감는다면, 쥐똥나무 꽃은 라일락처럼 진한 향기로 벌들을 모은다. 장미가 담장을 장식한다면, 쥐똥나무는 회양목처럼 나무 자체가 담장으로 쓰인다. 워낙 도심의 매연에도 건강하고 회양목 보다도 키가 커서 담장으로 훨씬 많이 쓰이는 듯하다.
예전에 잘 가꾸어진 집 담장에서 장미덩굴과 쥐똥나무가 함께 핀 걸 본 적 있다. 빨간 장미꽃과 하얀 쥐똥나무 꽃도 잘 어울렸지만 향기가 섞여 더 강렬했다. 그 집주인의 안목에 확실하게 감동받아 자꾸만 생각이 났다.
장미향기가 공기를 가볍게 감싸는 듯 향긋하다면, 쥐똥나무 꽃 향기는 묵직한 듯 부드럽게 퍼진다. 쥐똥나무가 있는 곳은 잘 기억해 두었다가 꼭 이맘때 산책 코스에 꼭 넣는다. 바로 향기 때문이다. 한번 알게 되면 장미꽃처럼 좋아할 수밖에 없다. 길을 걷다가 '어디서 좋은 향기가 나지?' 싶으면 주변을 둘러보시길 바란다.^^ 분명 이렇게 작은 꽃이 피어 있을 것이다. 마스크를 내릴 수 없다면 초록나무 담장 주변에 벌들이 윙윙거리고 있는 것이 쥐똥나무일 가능성이 높다.
나에겐 비밀이 있다. 사실 비밀이 아니라 숨기는 것이 더 맞겠다.
기억을 더듬어 과거로 가보면 나는 어디 가든 눈에 띄는 아이였다. 미모가 놀랍거나 외모가 남달라서가 아니다. 순전히 이름 때문이다. 이름을 바꾸고 싶던 날이 많았다.
특이한 이름은 학창 시절 내내 곤란스러운 일들을 만들었다. 선생님들은 출석부를 부르기도 전에 이름을 부르며 누구인지 손을 들게 하셨다. 수업 중에 '누구 해볼 사람?'이라는 말이 나오면 한숨이 나왔다. 출석부를 펴면 날 부를게 뻔했기 때문이다. 종종 날짜와 같은 끝자리 번호를 부르는 선생님도 있었지만 발표나 칠판 문제 풀기를 할 때면 나갈 준비를 해야 했다. 이름 때문에 항상 0순위로 불려 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또 불편한 건 사회 나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름 덕분에 한번 만나면 금방 날 기억했다. 그래서 였는지 어디서 이름을 이야기하거나 이름을 밝혀야 하는 걸 피하게 되었다.
쥐똥나무라는 이름은 누가 지었는지 모르지만, 쥐똥을 흔히 볼 수 있던 시절에 지어진 것은 맞는 듯싶다. 꽃이 지면 까만 열매가 열리는데, 약간 긴 타원 모양이 쥐똥을 닮아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름 짓기는 북한어가 더 만족스럽다. 검정 알 나무가 북한식 이름이라니 말이다. '알'과 '똥'의 차이는 북한과 우리와의 관계만큼 너무나 다르고 동떨어진 시선인 건 분명한 듯싶다.
나무나 꽃 이름이 동물이나 사람을 비하하는 듯한 이름이 많다는 건 이미 알려져 있다. 요즘은 꽃 이름들도 순화되거나 다른 이름으로 고쳐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쥐똥나무는 여전히 쥐똥나무로 불린다. 나도 한번 듣고는 바로 기억할 수 있었다. 그게 특이한 이름의 장점이다.
나무는 자기 이름이 마음에 들까?' 그래도 향기를 맡을 때마다 이름 때문에 고생했던 나와 비슷해 보여 더 시선이 간다. 때론 사람들이 이름을 모른 채 향기 좋은 담장나무로 기억했으면 싶기도 했다.
나는 필명으로 글을 쓰고 있다. 그래서 안심이 되고 편안하다. 잠시 향기로운 쥐똥나무 꽃을 보며 좀 다른 생각이 들었다. 특이한 이름을 가진다는 건 금방 각인되어 기억될 수 있다는 것과 글을 쓸 수 있다면 어떤 이름이든 상관없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