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친구 한송이

백일홍

by 무쌍


년 오랜 친구 한송이가 찾아온다. 구는 해마다 베란다 창문에 피는 분홍색 백일홍이다. 매년 꽃을 피운 후 씨앗을 받아서 다음 해에 앗을 심 키웠다. 그렇게 5년째가 되었다.

무슨 일인지 작년엔 꽃이 많이 피지 않아 씨앗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씨앗은 작고 모양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심은 씨앗 중 하나만이 싹을 틔웠다.

큰 화분 하나를 모두 차지한 싹은 여유롭고 힘 있게 커갔다. 리고 다리던 한송이 백일홍이 피었다.

5년째 핀 백일홍은 처음 본모습 그대로 꽃잎을 하나씩 펼쳐냈다. 꽃잎이 다 피면 중심부가 솟아오르며 꽃술 속에 작은 꽃이 또 피었다. 마치 꽃 속에 꽃이 있는 듯 보였다.

백일홍 중 분홍색이 가장 많이 핀다 @songyiflower 인스타그램

얼마 후 줄기에서 여러 개의 작은 가지가 뻗어 나 스무 개가 넘는 꽃송이가 나왔다. 꽃이 남긴 씨앗은 예전보다 훨씬 많았고, 맨 처음 산 씨앗 봉투에 담겨 있던 종자와 비슷해 보였다.


이 꽃은 언제나 내편인 듯 보는 것 만으로 든든다.

먹고 쓰는 살림 주머니가 넉넉하지 않을 때도, 집안일이 버겁고 지루해도 내 곁을 지켜주었다. 낮엔 더 품위 있게 꽃잎을 펼친 채 뜨거운 태양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여름 태양이 내리쬐는 열기를 모두 뺏아가듯 더운 날씨 더 잊게 해 주었다.

베란다에 핀 백일홍/ 자른 백일홍 @songyiflower 인스타그램

한번 피면 꽃잎이 본연의 색이 다 사라지고 연한 갈색으로 변하는 모습을 오랫동안 볼 수 있었다. 나는 꽃이 시들고 줄기까지 완전히 말라 한해살이가 끝이 후에도 잠시 그대로 두었다. 새싹이 나고 꽃이 완전히 질 때까지 관찰하다 보니, 나도 모르 숨겨진 감성들 하나하나 보이기 시작했다.

그 꽃 한송이가 얼마나 안전하게 나 지키며, 얼마나 나를 힘나게 하는지 모른다. 꽃은 한 해 동안 나의 걱정과 한숨을 대신 먹으며, 새봄을 꿈꾸게 하는 씨앗을 선물로 주고 갔다.

제 나는 화분에 그 선물을 넣어두고 날마다 기다린다. 곧 분홍색 옷 입은 오랜 친구 한송이가 알려주는 옛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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