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자투리 시간을 모아요

잠시 멈춤

by 무쌍

우물 쭈물하다가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끝나버리면 어쩌지? 매일 새 아침이 밝아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인생에 주어진 시간은 언젠가 끝이 난다.

가장 두려운 건 죽음이 임박한 어느 날에 다 이루지 못한 것들로 괴로워하며 후회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일상의 모든 순간을 죽음을 의식하며 사는 건 어렵다. 즐거운 것들은 눈앞에 늘 있으니 말이다.


지금도 토마토를 볼 때마다 외할머니가 떠오른다. 외할머니 장례식은 일주일 넘게 이어졌다. 동네에서 가장 큰 어른이시기도 했지만, 무슨 이유인지 어른들만의 비밀이 있었던 것 같다. 례식을 하는 동안 어른들이 할머니가 잘못된 뭔가를 드셨다는 걸 들었고, 엄마에게 할머니가 뭘 드신 거냐고 물었다. 엄마는 할머니가 토마토를 드시고 아프셨다고 했다. 그런데 얼마 전까지 엄마는 할머니가 왜 돌아가시었는지 모르고 계셨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막내인 엄마를 위해서 다들 쉬쉬했다고 한다. 명절이 돌아오면 한동안 잊고 지냈던 슬픈 가족사가 하나씩 떠오른다.


득 기억하는 작은 조각들을 맞춰 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 기억들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시작은 호기심이지만, 살아갈 방향도 함께 고민해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브런치를 시작한 지 1년이 훌쩍 지났다. 획은 일주일에 한 편의 글을 쓸 작정이었지만, 여러 가지 장애물이 글쓰기를 방해했다. 변명을 하자면 년 11월까지 18개의 글을 쓰고 그중에 하나는 공모전에 그리고 런치 북 <나에겐 정원이다>을 만들었다. 그때까지 무엇을 써야 하는지 잘 몰랐던 것 같다.


가을 또 아버지의 기일이 돌아왔지만, 11월 팬더믹은 2차 재유행이 고 고향에 가지 못했다. 몇 년 있으면 돌아가신 아버지의 나이가 된다. 다시 냉정해져야 했다.

그 무렵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글 쓰는 시간을 고무줄처럼 늘려 쓰다 간 취미생활 밖에는 안될 것 같았다. 글쓰기에 천재적인 재능이 없다. 게다가 글쓰기는 배울 수도 없고, 날마다 쓰면서 스스로 장인(^^;)이 되어야만 한다고 믿는다. 런데도 너무 한가롭게 미룬 것이 문제였다.


전업주부이고, 아이 둘은 원격수업을 받으며 집에 머물고, 남편도 여전히 재택근무 중이었다. 혼자 만의 시간은 도통 나타날 희망이 없다. 가족들은 일과를 마치고 휴식을 누렸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그동안 글을 쓰려고 시간을 기다린다는 우스꽝스러운 고집을 피운 듯했다.


<타니아의 작은집> 책은 독일인과 일본인의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가도쿠라 타니아가 쓴 에세이집이다. 부모의 영향을 그대로 물려받은 그녀의 살림과 인테리어 노하우가 쓰여 있다. 독일 어머니와 일본에서 자란 자신의 스타일을 잘 혼용해서 그녀 만의 스타일을 만들었다. 글에서 묻어 나오는 그녀의 균형 잡힌 삶이 무척 탐이 났다.

그녀의 일기장을 보듯 편안하게 읽다가 '특별한 시간관리 습관'에 대한 어머니와의 에피소드서 눈이 번쩍였다. 녀의 어머니는 아이들을 낳고 대학을 다니기 시작해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고 했다.



예전에 한번, 어떻게 그렇게 주부와 어머니, 학생이라는 역할이 동시에 가능했는지 여쭈어 본 적이 있어요. 그러자

"시간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렸다"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아이들이 학교를 가면 엄마도 학교에 갔다가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아이들을 재우고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 대학에서 배운 내용을 공부했다고 합니다. 사는 되도록 오후에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에 끝마치고 세탁과 장보기, 바닥 청소들은 요일을 정해 효율적으로 관리하셨다고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시간은 그냥 흘러만 간단다.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얼른 시작하렴."

그동안 읽어 왔던 수많은 자기 개발서에서 깨닫지 못했던 시간관리에 대한 노하우를 엉뚱한 곳에서 알게 되었다.

사실 내가 원하는 것이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원하는 마음만으로 이루려면 알라딘의 지니를 불러야 할 것이다. 그 책을 읽었을 때는 첫아이를 출산하고 휴직을 하고 있던 때였다. 만약 갑상선이 좋아지지 않아 회사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면, 다른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너무도 많았던 시간이다. 아이는 시간이 가면 유치원도 학교도 갈 텐데 무엇을 해야 할까? 그럼 뭔가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책 속에 그녀와 그녀의 엄마가 하는 조언은 현실로 와 닿았다.

작은 순간이지만 꽃 피울 순간을 위해서 고요한 시간을 록하기 시작했다. 기를 쓰기 시작했고, 책을 더 많이 읽기 시작했다.

날마다 작은 퍼즐 조각을 찾으려고 읽었고, 자투리 시간을 글로 남겼다. 브런치에 매일 글을 올린지도 3개월이 되어 간다. 매일 쓰다 보니 습관이 되어 버린 듯 싶다. 하루쯤 안 써도 되지 않을까 싶다가도 못 견뎠다. 글쓰기 연습을 위해서 매일 쓰기를 시작했지만, 어느새 매일 올리기 위해서 글을 쓰는 기분이 들었다.

설날 연휴 동안 잠시 며느리로 돌아간다. 그런데 일상을 멈춘듯 한 기분이다. 그래서 브런치 매일 글올리기를 멈추는 이유가 거창해야 할 것 같았다. 소로우가 윌든 호수에서 오두막을 짓는 이유를 다시 떠올리고 싶다.

" 내가 숲으로 간 것은 생각이 있는 삶을 살고 싶어서였고,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 대면하고 싶어서였고, 인생이 가르쳐 주어야 하는 것을 내가 배울 수 있을지 확인하고 싶어서였고, 죽음을 맞이했을 때 인생을 헛살았다는 후회를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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