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온통 사방이 귤나무 숲인 곳에서 자랐다. 태어나서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살던 곳은 귤밭이었다. 귤나무 사이로 야생화는 봄부터 가을까지 수없이 피어났다. 난 어려서부터 눈 만 뜨면 하루 종일 집 밖에서 놀았다. 늘 과수원 일로 바쁘시니 그때 나의 놀이터는 야생화가 무성한 들판이거나, 귤나무 사이에 돌 담 아래였다. 모두 다 시멘트 포장되지 않은 자갈돌이 많은 흙밭이었다.
해가 지고 나면 가로등 불빛도 없는 캄캄한 곳이었다. 오직 부엌에서 피우는 불이나 현관에 걸어둔 전구에서 빛이 나올 뿐이었다. 어둠 속에서는 모든 것이 고요했다. 낮동안 일을 하시던 부모님들도 모두 집안에 계셨다. 적막이 흐르는 저녁은 비둘기들이 구굴 거리는 소리가 들리거나, 어쩌다 폭풍이 부는 날엔 집 밖을 내다보기도 무서웠다. 어서 날이 밝기를 고대하며 빨리 잠들었던 기억이 난다.
특히 계절을 떠올릴 수 있고 향기와 꽃잎의 모양은 선명해서 그대로 그림으로 그릴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책을 보다가 혹은 사진이나 그림으로 그 장면이 익숙해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아마도 어린 시절 언젠가 보았던 풍경 안에서 피어 있던 꽃이 었을 것이다. 아이들의 엄마가 되고 나서 이상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어린 시절에 어떻게 지냈고, 무얼 좋아했는지, 어떻게 놀았는지 궁금해졌다.
제주에서 온 귤
겨울이 되면 제주에서 귤 택배가 온다. 올해도 귤 박스들이 비슷한 시기에 도착했다. 귤밭에서 방금 따서 보낸 귤은 상자를 열자마자 익숙한 향기가 난다. 아버지 손과 정전가위에서 나던 귤나무 냄새다. 그리고 귤껍질엔 귤밭 흙냄새와 귤밭에 부는 바람이 담긴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이 묻어 있다.
귤밭엔 귤나무 말고도 꽃이 가득 핀 정원이 있었다. 장미꽃이나 수련, 수국 꽃은 어린 시절을 기억하게 한다. 그 꽃들을 마주 볼 때면 글로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글을 쓰라고 부추기는 꽃들에게 뭔가를 되돌려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언지 모를 숙제가 꽃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단단하게 연결된 그 감정과 이야기들은 잠잠히 있다가 꽃을 마주 보면 바로 화려한 화면으로 생생하게 그려졌다. 그 기분들을 거부할 수 없는 소명으로 느꼈다. 어떤 식으로든 세상으로 끄집어내야 했다. 그것이 나의 소명이 되었다.
중랑천 산책로에서 만난 유채꽃 2020.12.2
귤밭 과거로 간 기억들은 알 수 없는 아련함 뒤에 그리운 존재들이 떠올라서 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유치원에 아이를 데리러 가기 전 일찍 집을 나섰다. 산책을 시작하니 어느새 땀이 나기 시작한다. 몸을 움직이면 잘 풀리지 않던 감정들도 자유롭게 된다. 걷다 보니 오랫동안 매진했던 감정들이 허공으로 사라져 버렸다. 어느 순간 휘발되어 자취도 보이지 않는다. 잠시 동안 내 몸에서 진동했던 것이 바람에 모두 씻겨져 버렸다.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걷다 보니 야생화 꽃밭이 궁금해졌다. 꽃밭엔 초록은 거의 사라지고 대부분이 옅은 황토색으로 뒤덮여 있었다. 초록이 남은 곳에 작은 노란 꽃이 보이길래 궁금해져서 다가갔다. 유채꽃 하나가 피어나 있었다. 마치 찬 겨울이 남은 초봄을 연상하게 한다.
유채꽃은 다시 나를 과거로 보낸다. 제주의 텃밭 안 푸성귀 사이에 아무렇게나 피어나는 유채꽃은 흔하디 흔하다. 이제는 봄이 되면 전국에 어디서든 유채꽃 밭은 쉽게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이 추운 계절, 제주에선 볼 수 있지만 이곳 서울에서는 보기 어렵다. 유채꽃을 보며 지난봄에 피지 못한 씨앗이 남았나 보다 싶었지만, 갑자기 나타나 날 놀라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시 나는 글을 써야 하는 이유를 찾는다.
어느 날부터 나의 기억들을 건드리는 모든 것은 나에게 자극이 되었다. 그리고 글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