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을 잘 키우고 싶어요

고무나무를 두 번이나 죽였습니다

by 무쌍

무언가 허기진 기분이 들면 둘 중에 하나다. 하나는 끼니를 때울 시간이 지나 배가 고파서 이거나, 아니면 마음속에 내가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는 것이다. 가족들의 식사를 책임지는 엄마로 보통 끼니를 건너뛸 경우는 거의 없다. 요즘처럼 모두가 집에 머무는 시간은 더욱 그렇다.

대부분 공허하고 허기진 기분은 내 내면에서 나온다. 자연을 찾아 나서야 한다는 신호다. 계절에 맞춰 주머니 달린 외투를 입고 운동화를 신으면 준비가 끝난다. 가족에게 곧 돌아올 것을 고하고 집 밖으로 나서면 구름처럼 붕 뜬 기분이다. 물론 아파트 현관을 열고 나가면 16층 복도에서 보는 시선은 늘 공중에 떠 있기도 하다.

아이들이 유모차를 타던 시절은 늘 아이가 있었지만, 이제는 혼자 산책을 나설 수 있다. 그리고 단 한 번도 외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늘은 어느 산책로로 가 볼까 정하는 일은 양다리 걸친 애인을 만날 궁리를 하는 듯했다. 두 애인을 다 좋아하는데 누굴 만나러 갈까? (상상하기 나름이지만 남자가 좋다는 것이 아니라, 산책하면서 전율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리고 난 이미 바꿀 수 없는 남편과 아이들이 있다.

소국화 2020.12

겨울 숲이 보고 싶어 진다. 가을을 다 보낸 나무들을 만나러 가야겠다. 팥배나무와 신갈나무, 아카시나무가 많은 뒷산을 향해 걷는다. 건널목을 건너 화단에 소국 화가 보였다. 주머니에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며 꽃을 먼저 만났다.

화단 뒤로 보니 안보이던 고무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추측하건대 이사 가는 사람이 나무를 버릴 수 없어 심어 놓았거나. 아님 누군가 버린 화분에서 나무만 옮겨 심었을 것이다. 주인이 있다면 고무나무를 길가 화단에 심을 마음을 먹었을 리 없으니까 말이다. 이 추운 날 고무나무가 버틸 확률은 그리 높지도 않다. 뒷산을 오르는 길로 들어 서니 이번엔 다른 고무나무가 잘려 있다. 그 고무나무는 수명을 다했는지 모르겠지만 뿌리는 보이지 않고 나무줄기와 떨어진 이파리들이 누군가 갖다 놓은 듯했다. 산에 고무나무는 얼마나 지나야 부엽토가 되는 것일까?


허기진 마음으로 산책을 나온 나는 잊고 있던 나무들이 생각났다. 가장 먼저 수년 동안 키웠던 뱅갈 고무나무가 떠올랐다. 십 년 전 1월 중순쯤이다.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오던 날 이삿짐을 맡았던 남자가 고무나무는 탑차에 넣지 못해서 트럭에 놓고 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보온이 제대로 안되니 나무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겨울이었지만 영상의 날씨였고, 나무에 대해서 너무 무지했던 나는 별일 없을 거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이사 온 후 고무나무는 나뭇잎을 다 떨구고 죽어갔다. 죽은 윗 줄기를 잘라 설탕물을 주고 영양제를 꽂았다. 제비꽃이 피던 4월이 되자 기적처럼 새로 싹을 피웠다. 그리고 7년을 더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 꽃시장에서 제법 가지가 많이 달리고 키가 큰 걸 샀지만 내가 그렇게 만들었다. 내가 얼마나 무지하고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그리고 마트에서 9,900원을 주고 작은 고무나무를 하나 샀다. 9년 가까이 키웠지만 올해 빨래를 옮기다가 고무나무 가지를 꺾어 버리는 바람에 그 역시 세상을 떠났다. 내가 키우다가 죽인 두 그루의 고무나무가 있었구나. 방금 전까지 버려진 고무나무들의 사연을 궁금해 하며, 주인이었던 누군가를 비난하려고 한 마음을 멈춰야 했다.


1607931542937.jpg 새싹이 돋은 뱅갈 고무나무 2012




지난가을에 새로 오픈한 맥주집 입구에 개업 리본을 단 고무나무를 만났다. 하지만 추운 겨울이다 되도록 고무나무는 가게 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가게 주인은 많은 손님을 보느라 고무나무를 볼 시간이 없었던 건지. 첫눈이 내린 날 고무나무 잎 위에 눈이 쌓였다. 그리고 봄이 오자 고무나무는 이파리와 줄기가 모두 황토색으로 변해 있었다. 고무나무 옆에 못 보던 와이배너가 세워져 있었는데 "맥주 맛은 맥주를 보관하는 온도가 중요합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나도 맥주의 맛있는 온도를 상상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배너에 쓰여 있던 그 적당한 온도의 숫자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보다 배너 뒤에 고무나무가 살기 좋은 온도가 더 궁금했다. 그 맥주집은 한동안 손님이 많았지만, 다음 겨울이 오기도 전에 죽은 고무나무 화분과 함께 사라졌다.



잠시동안 사람들 손에 자라는 화초들을 떠올렸다. 화초를 가꾸거나 정원을 만든 사람들은 어딘지 모르게 다정한 분위기가 있다. 그러나 화려한 꽃이나 큰 나무를 갖다 놓고 가꾸지 않거나 직접 돌보지 않는 사람들은 식물도 소유물로 취급될 뿐이다. 직접 화초를 가꾸는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것에 능숙하다. 물을 주어야 하는 시기를 알아채고 일조량은 맞는지 잎과 줄기에 상태는 어떤지 날마다 들여다봐야 한다. 매일 반복되는 일들을 할 때 널 뛰던 감정들은 차분하게 내려놓아야 한다. 그런 마음을 모아서 화초들에게 이야기해야 한다. 잘 자라 주렴 하고 말이다.


그러니 식물도 알아챈다.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걸 말이다. 우리는 어떠한가?


나에게 오는 화초들에게도 마음을 다하지만 늘 좋지만은 않다. 화초만 들고 오면 죽인다는 사람들도 있고, 그린 썸(greenthumb)과 같은 식물을 잘 키우는 마법의 손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나는 그 두 지점 어딘가에 있지만, 수명을 다해서 떠나든, 갑작스럽게 떠나든 아쉬운 마음은 같다. 생명을 잉태하고 죽음으로 사라지는 것은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진리다. 그러니 매번 나에게 온 식물들에게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결과가 어떨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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