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에서 사람 손이 닿지 않아 생긴 야생의 풍경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비어있던 공터는 개망초 꽃밭이지만 어느 날 포클레인이 나타나 공사를 시작한다. 민들레나 질경이가 자라는 가로수 아래 인도는 시도 때도 없이 보도블록 교체 공사 중이다. 자주 손질을 않는 화단에 털별꽃아재비와 한송이 삼색제비꽃은 예고 없이 계절 꽃모종으로 교체된다. 큰 금계국이 피던 도로 옆자리는 공원이 생기면서 시멘트로 메워진다. 야생이 사라지는 광경을 수없이 봐왔다.
꽃 사진을 찍다 보면 이런 상황에 익숙해진다.계절이 바뀌어도 풍경은 바뀌기 때문이다. 다행히 사진이 남아서 위로가 된다.
나는 도심 속에 그런 장소를 찾아다닌다. 특히나 인적이 없는 야생화 꽃밭에서나 아무도 오지 않는 길 위에같은 곳이다. 나의 내면 어딘가에 사람이 아니라 야생화로부터 받은 위로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꽃 사진을 찍지만, 너무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면 쉽게 자리를 떠날 수 없다. 누가 와서 나와 이 꽃들이 있는 풍경을 사진에 담아줬으면 할 때가 있다.
' 사진 좀 찍어 주실래요?' 부탁하고 싶지만 마땅한 사람을 만나긴 어렵다. 이른 아침 꽃 사진을 주로 찍으러 나서니, 오히려 이 아침에 꽃을 찍는 나를 보며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더 많다.
야생화 꽃밭(수레국화, 꽃양귀비,유채꽃)
지난가을 텃밭 가는 길에 어마어마 한 담쟁이 담장을 찾았다. 한참 동안 담쟁이덩굴을 사진으로 담았다. 지나가는 행인은 없었고, 나와 담쟁이덩굴 둘 뿐이었다.
셀카 모드로 찍어 볼까 싶었지만 담쟁이 이파리 몇 장과 내 얼굴이 담긴 사진을 원하지 않았다. 누군가 지나가는 듯해서 쳐다봤지만 자전거를 탄 아이가 휙 하고 간다. 그리고 조금 더 담쟁이와 둘이 있었다. 이번엔 좀 사납게 느껴지는 남자가 지나간다. 물론 무섭다고 느낀 건 경계심 때문이니 그분은 잘못이 없다. 괜히 나쁜 사람 취급한 기분이 들어 미안했다. 잠시 후 아주머니 한분이 지나가는데 통화를 하면서 지나간다. 아쉽지만 사진 찍을 때마다 짝꿍을 데리고 다닐 수도 없고, 그냥 돌아 서야 했다. 내일 다시 오면 담쟁이 이파리들이 남아 있지 않을 텐데, 아쉽지만 집으로 향했다.
완벽한 포토존은 이런 곳인데 , 담쟁이 잎이 다 떨어지기 전에 누구든 이곳을 발견하면 꼭 사진을 담아 갔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인적이 드문 전철역 연결 통로벽 담쟁이덩굴
꽃을 쫓아다니다 보면, 계절에 맞게 잘 가꾼 공원도 사진을 찍는데 빠뜨릴 수 없다. 꽃구경 나온 사람들이 많을 땐 사람들 사진을 찍어주다가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특히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나서면, 유독 더 사진을 찍어 달라는 사람이 많다. 보통 여자분들이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는데 카메라를 들고나간 날은 할아버지들도 찍어 달라고 하신다.
혼자서 꽃구경을 나온 분들은 찍은 사진을 확인하며포즈도 바꿔가며 찍어 달라고 한다.
'나도 사진 한 장 찍어 달라고 할까? '싶은데 상대방은 내 눈치를 아는지 "저도 한 장 찍어드릴까요?"묻는다. 그런데 모르는 사람에게 찍어달라는 것이 영 어색하다. 괜찮다고 대답했지만 그들이 사라지자, 나도 꽃 앞에 앉아서 셀카 모드를 찍어 본다.
꽃들은 저렇게 반짝이는데, 꽃들과 있는 나는 초라하기만 하다. 먼저 얼굴이 탈까 봐 모자를 쓰고 나온 모습이 신경 쓰인다. 방금 전 뷰파인더 안에서 본 꽃들은 예쁜데, 나랑 같이 있으니 어색하다. 모자를 벗어보지만 눌린 머리만 눈에 떠 띈다.
꽃송이들과 발 사진만 찍으려고 보니 낡은 운동화가 좀 지저분해 보인다. 꽃 위로 손이라도 올려볼까 했는데, 사진 찍으러 다니느라 검게 그을리고, 주름이 눈에 띄어서 못 찍겠다. 그래서 나는 꽃만 찍는다. 다시 설레는 기분으로 꽃들을 본다.
셔터를 누르면서 꽃들과 충분히 그 순간을 함께 한다. 어떤 꽃이건 세밀하게 나를 마주 본다. 꽃들과 온전히 함께 하고 싶어 혼자 나온 걸 잊고 있었다. 누군가 나왔다면 꽃을 배경으로 내 사진을 몇 장이고 찍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꽃을 충분히 볼 시간은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완벽한 포토존은 초록으로 뒤덮은 들판이나, 텅 빈 겨울산 어디에든 있다.
인적 드문 산책로의 야생화
산책을 되도록이면 혼자 나선다. 아이들은 꽃 사진을 찍는 엄마를 지루해한다. 아무리 봐도 같은 사진인데 여러 장을 찍고도 만족 못하는 나를 보며 가족들은 가던 길을 재촉한다.
곧 눈이 내릴 것이다. 나뭇잎을 다 떨군 나뭇가지에 새하얀 눈이 쌓이는 날을 기다린다. 눈 덮인 나무를 바라보는 내 뒷모습을 누가 찍어 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