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괜찮을 거야

벌개미취 한송이

by 무쌍


텃밭을 가는 날이었다. 봄 내내 쌈채소와 고추를 실컷 먹었는데 가을엔 농장에서 김장채소 모종과 씨앗을 나눠줬다. 문제는 채소들이 너무너무 잘 자라는 것이었다. 정말 김장준비를 해야 할 상황이 되었다. 배추는 약을 뿌리지 않아도 애벌레 몇 마리 잡아 주니 속이 찼다. 밭에 갈 때마다 배추는 부풀어 커지고, 무는 토실토실 뚱뚱해졌다. 해마다 친정과 시댁에서 가져다 먹었던 내가 추를 키우고 김장을 야 한다니 덜컥 겁이 났다. 한 시간은 걸어가야 도착하는 텃밭데, 김장 걱정을 한참 하느라 다리보다 머리가 더 뻐근해왔다.

텃밭은 도심에서 좀 벗어나 신도시 인근에 있다. 가는 길은 빌딩 숲을 벗어나 탁 트인 도로를 한참 지나야 한다. 그리고 새로 생긴 전철역 앞에서 부터 신도시 아파트 단지로 가는 길까지 200미터 정도 되는 거리는 인적이 거의 없다.


도로의 가로수와 보도블록 사이에 핀 야생화들이 반갑게 맞아 주는 것 말고는 쌩쌩 지나는 차 소리를 들으며, 나는 꼼짝없이 혼자 걷는다. 내 앞으로 자전거를 타는 사람 둘이 있었는데 따릉이 자전거 보관소에 세우고, 내 뒤를 따라 걸어온다. 나는 건널목에서 보행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여자가 친구에게 말을 한다.
"마는 매일 죽는다고 했어. 그것도 내가 기억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말이야.


"왜?"


"힘들었겠지 그래서 내가 말 안 듣거나 때를 쓰면, 너 때문에 못살아 죽어 버린다고 겁을 준거야."


"야! 그건 엄마들 힘들어서 하는 말이지. 엄마가 힘들잖아."



"뭐? 넌 몰! 넌 그런 소리 들어봤어?"

"... 아니. 그래도 애들 키우려면 힘들잖아 그럴 수도 있지"

"무리 그래도 어린아이한테 할 소리는 아니지. 난 아이들 한테 그런 말은 안 해, 난 엄마가 죽어도 신경안 쓸 거 같아. 엄마 때문에 너무 억울해. 날 완전히 이상하게 만들었어."

"그래도 엄마잖아. 안 그래? 이젠 컸으니 너도 신경 안 쓰고 살려고 해 봐."

"정말 짜증 나. 미치겠어."

그런데 신호등이 바뀌었다. 그들은 사거리 신호등에서 버스 정류장 방향으로 갔다. 더 이상 그들의 대화를 들을 수는 없었다. 건널목을 건너고 나는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을 잠시 바라봤다. 엄마를 그리워하는 마음과 억울한 마음을 나누고 싶었다.


종종 가까운 사람의 하소연을 들어주다가 "넌 몰라"
라는 말에 무너진다. 누군가의 하소연을 듣다가 이 말을 들으면 나는 위로의 뜻이 담긴 말을 찾지 못한다. 상대는 위로를 들을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는 각자 살아가는 선과 결이 다르다. 물론 그래서 나를 타인들에게 이해시키는 건 그만큼 쉽지 않다. 둘 다 쉽지 않은 대화를 하고 있었던 것은 분명했다.

얼마 전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산문집을 읽었다. 아름다운 시만큼이나 산문집은 아주 깊고 섬세한 시선을 담고 있었다. 책 속에서 위로에 대한 그의 글은 인상적이었다.



"당신을 위로하려는 사람이 당신에게 이따금 힘이 되는 그런 단순하고 소박한 말들 안에서만 살아가고 있으리라 여기지는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의 삶은 분명 당신의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은 고난과 슬픔 속에 자리하고 있을 테니 말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는 당신에게 그와 같은 말들을 전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나 역시 이런 경우가 많았다. 사이가 깊어지면 가족 이야기나 개인적인 일들을 하게 된다. 내 사정을 아는 누군가에게 말을 하는 하는 자체에서 위안을 느끼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듣는 누군가도 말하는 사람만큼이나 어려운 시간을 같이 해야 한다. 하소연을 하는 사람에게 딱 맞는 위로를 해줄 수는 없다. 지난번 만나 나누었을 고민들을 이어갈 뿐이다. 비슷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디는 걸 확인하는 정도의 위로를 할 뿐이다. 특히 인간관계에서 벌어지는 문제는 극적으로 바뀌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오래전 누군가의 하소연 들어주다가 , 나도 같은 소리를 들었다.

그는 "넌 몰라. 겪어 보지 않아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야. 내 입장도 모르면서 그런 말을 하지." 그러면서 화난 얼굴로 날 쏘아봤다.


하지만 나도 똑같은 경험을 이미 했다. 그의 하소연들을 듣고 있으니, 그 상처가 생생히 살아나서 나를 울릴 것 만 같았다. 그 감정을 참고 그저 그럴 수 있다는 말을 했을 뿐었다. 나도 같은 상황을 겪었는데 내색할 수 없었다.럼 내 상처는 공개되어 버리고, 그의 상처가 아무런 위로를 받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방금 마주쳤던 그도 어렸을 때 수없이 엄마에게 들었던 '죽을 거다'라는 협박의 말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할 것이다. 나쁜 기억은 떠올릴만한 상황이 되면 트라우마로 되살아 난다. 특히 어린 시절의 공포심은 상당했을 것이다. 어린아이는 자신이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껴야 한다. 그래야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이 마땅히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고 믿게 된다. 사랑을 받지 못한 유년시절을 겪었다면, 다 큰 성인이 되어도 자신의 가치를 알지 못하고 방황한다. 글을 쓰다 보니 표현하지 못하는 공허함이 나의 어린 시절로 자꾸 끌고 가는 기분이다.


나도 결혼은 하고 나서, 엄격한 엄마에게 지쳐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엄마에 대해서 부정적인 말을 한다는 것은 오히려 내가 이상한 딸이라고 공개하는 것이었다. 여태껏 내색할 수 없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언젠가 나를 알아줄 엄마에 대한 기대심도 있었다.


봉화산 벌개미취 2020.10.03

지난가을 봉화산 벌개미취 군락에서 사진 한 장을 찍었다. 아침이슬을 맺은 벌개미취를 찍으러 군락지에 사진을 찍으러 갔다. 서늘해진 아침저녁 공기가 촉촉하게 이슬을 만들어 한껏 싱그러웠다. 꽃무리에서 떨어져 등산로 나무계단 틈에 벌개미취 한송이가 눈에 띄었다. 안전한 군락지에서 벗어나 등산로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자신이 태어난 곳을 떠나 새로운 곳에 위풍당당 모습으로 활짝 핀 꽃 한 송이였다. 사람들에게 밟힐지도 모르는 위태로운 곳에 서 꽃을 피웠는데 말이다.


벌개미취 2020.10.03

비록 작은 줄기 하나로 꽃을 피웠지만 , 벌개미취 무리 속에 꽃송이와 똑같은 한송이를 피워냈다. 문득 그 한송이 야생화가 나와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홀로 뚝 떨어져 있지만 반짝이며 피어났다. 나만 모르는 내 모습이 있지 않을까?

아무도 사랑해주지 않아도 나를 다정하게 안아주고, 누구도 응원해주지 않아도 잘할 수 있다고 말을 걸어주는 그 사람이다. 그는 바로 나 자신이었다.


텃밭에 가다가 만난 그들의 대화에서 갑자기 나도 알 수 없는 문제가 풀린 듯 홀가분함이 느껴졌다. 엄마라는 바운더리 안에서 편안한 것을 누리고 싶지만, 어린아이처럼 엄마가 하라는 대로 살 수는 없다. 난 마흔이 넘었고, 부모님이 도움이 필요한 나이는 훨씬 지났다. 그런데도 엄마에게서 벗어나는 것을 큰 죄책감으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엄마에게서 도망치는 것이 가족이라는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거리를 둔다는 것뿐인데도 말이다.

나는 이제 두 아이의 손을 잡고 등교를 시키는 엄마가 되었다.

엄마가 나를 키우던 시절과 지금은 많은 것이 달라졌다. 일흔이 넘으신 엄마에게 다른 인생을 기대하는 건 의미가 없어졌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타인의 응원도 필요하겠지만, 스스로 자부심을 갖고 힘을 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엄마 때문에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너도 컸으니 신경 안 쓰고 살려고 해 봐'라는 말이 지금 나에게 위로로 전해진다. 그래 맞다. 난 이미 성인이다. 설령 상처를 준 엄마에게 사과를 받지 못하더라도 지난 일이다. 스스로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서로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거리에서 각자 꽃을 피우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엄마에게 매일 하던 안부 전화도 일주일에 한두 번으로 줄였다. 전화가 줄었지만 가끔 하는 안부전화도 충분했다. 내가 매일 전화를 하지 않아도 엄마는 잘 지내신다.


텃밭에서 김장채소들을 수확했다. 배추 절이는 것이 너무 걱정돼서 자는 동안 꿈속에서 몇 번이나 소금을 쳤는지 모른다. 난생처음으로 직접 밭에서 기른 채소로 김장김치를 했다. 남편이 말없이 조수 역할을 해주니 수월했다. 걱정을 했지만 김치통을 채우고 나니 부자가 된 기분이다.

내가 만든 배추김치 맛은 막 버무린 익지 않은 신선한 배추김치 맛이었다. 막 스무 살이 된 것처럼 겉모습은 성인이지만, 얼마 전 까지는 엄마품이 익숙한 고등학생이 었던 시절을 떠올리는 맛이었다. 툰 손으로 만든 김장치는 서서히 익으면서 또 다른 맛을 낼 것이다.

이제야 비로소 엄마로부터 도망이 아닌 독립을 한 듯하다. 동안 난 김장김치를 하는 것이 두려웠는지 엄마가 두려웠는지 모르겠다. 엄마에게 김장을 잘해서 칭찬을 받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처음이지만 내 방식으로 김장김치를 담갔으니 그것으로 된 것이다. 다행히 김치는 밥상 한가운데 올려진다.

봉화산에 벌개미취 한송이는 꽃잎이 다 시들 때까지 무탈하게 자리를 지켰다. 지금은 겨울의 고요함 속에서 봄을 기다리며 쉬고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무가 꽃이 되면 가을 제비꽃이 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