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그 시간을 잠시 잡아두는 것이다. 딱 그 순간만이 저장된다. 꽃이나 나무가 보여주는 건, 스스로 치장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다. 사진으로 담은 꽃을 다시 찍을 기회는 없다. 같은 풍경을 기대하며 그 자리를 찾아가지만 꽃이 시들해져 있거나, 사라진 후다. 때로는 전날보다 꽃송이가 탐스럽게 피어 가슴을 뛰게 하기도 하지만 흔한 일은 아니다.
꽃을 찍으러 다니다 보면 여러 가지 법칙들이 만들어진다.
첫째, 꽃을 만나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
장 보러 가는 길에 민들레가 피어 있었는데, 돌아오는 길에는 꽃이 잘려 사라져 버렸다. 만개한 나팔꽃 덩굴이 하루아침에 돌돌 말려서 정리되기도 한다. 화단에 핀 꽃이라도 길가에 꽃은 늘 생사를 알 수가 없다.
둘째, 꽃은 모든 것이 아름답다.
꽃 봉오리부터 피는 모양, 활짝 만개한 후 시들어 가는 모습도모두 꽃이다.시든 꽃잎이 바닥에 떨어진 것도 꽃이다. 꽃의 시간에 맞추어 따라가면 여러 가지 느낌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셋째, 꽃은 저마다 최고의 시간이 있다.
밤에 피는 달맞이 꽃은 새벽에 나가야 핀 꽃을 찍을 수 있고, 작은 야생화 봄까치 꽃은 태양을 충분히 쬐어야 완전히 꽃봉오리를 연다. 그래서 흐린 날은 핀 꽃을 찍을 수 없다.
국화과의 꽃들은 한번 피면 지기 전까지 언제든 찍을 수 있다. 벌개미취 꽃은 오랫동안 피어 고마운 꽃이다. 나팔꽃은 이른 아침부터 꽃송이를 열어 오후면 돌돌 말려 시들어 버린다. 영문 이름도 모닝글로리(morning glory)다.
달맞이꽃과 벌개미취
넷째, 꽃은 태양이 내리쬐는 양지바른 곳에 있다.
꽃을 보러 다니다 보면 얼굴도 손도 까무잡잡해진다. 늘 태양을 쫓아다니는 기분이 들 정도다.
겨울엔 잠시 뜬 태양도 반갑지만, 여름의 태양은 너무 눈이 부셔서 꽃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 살짝 구름이 가려서 눈이 편안해져야 비로소 꽃들이 눈에 들어온다. 꽃 사진을 찍는 것도 너무 밝은 곳에서는 꽃을 찾아도 사진을 찍지 못한다. 여름엔 소나기만큼 반가운 것도 없다. 물기를 머금은 꽃잎은 훨씬 진하고 선명하다.
여전히 꽃을 찾아다니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반갑게 핀 꽃구경에 시간 가는 줄 모를 지경이다.때론 분주하게 움직이며 쉬지 않는 마음을 꽃이 멈추게 한다. 꽃과 마주 앉아 있으면 '지금'을 일깨워 준다. 잠시 동안 꽃을 보고 있었다. 온 힘을 다해 줄기를 끌어올려 꽃을 피운 수고와 힘이 느껴졌다.
가끔은 꽃 앞에서 사진을 찍지 않고 멍하니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그럼 꽃이 나지막이 속삭인다.
" 두고 봐! 우리가 사는 동안 겪어낸 수고와 견뎌온 힘으로 결국엔 저마다 꽃으로 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