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사진을 많이도 찍었다. 누가 봐도 막 피어난 싱그러운 모습을 보면 나도 기운이 났다. 약을 먹어도 기운이 안나는 날이 더 많은 나였기에 길가에 만난 작은 꽃송이가 대견하고 부러웠다.
떨어진 능소화 꽃송이
옴짝달싹 못하던 시절에는 담벼락 아래로 떨어진 능소화 꽃송이도 부러웠다. 마치 집을 나온 후 잠시 맛보는 자유를 능소화도 느끼고 있는 것만 같았다.
동네 능소화나무가 있는 집은 세 곳이다. 몇 년 전부터 낡은 주택이 빌라로 지어지는데도, 능소화가 있는 집은 아직도 그대로다. 나무는 덩굴처럼 휘어지면 가지를 뻗고, 꽃줄기는 등나무 꽃처럼 아래로 길게 늘어지면서 여러 개의 꽃송이가 달린다.
능소화가 만개하면 낡은 벽에 꽃 장식을 두른 듯, 지나는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곧 여름이 온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능소화가 장맛비에 떨어져 바닥에 쏟아진 듯 쌓인 모습을 보려고, 주인이 집 앞을 쓸기 전에 가는 일도 즐거운 일이었다.
꽃송이는 통 잎이라 떨어진 모습도 사진으로 담기에 손색이 없다. 능소화는 피어 있을 때나, 지고 나서도 사진을 잘 받는 꽃 중에 하나다.
꽃을 쫓아다닌 건 꽃이 예뻐서였는데, 이제는 보이는 풀포기도 다 예쁘다. 사람들은 나이 들어 그런 거라지만 난 취향이 생긴 거라고 하고 싶다. 막 사춘기가 시작할 무렵 좋아했던 가수나 배우들도 나처럼 나이를 먹는다. 그들이 잘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잘 지내지?' 스스로 묻는다. 누군가에게 묻지 않아도 내가 더 잘 아는 것이 있다.
바로 나의 안부다.
집안일을 한 후, 커피 한잔을 들고 낮에 찍어둔 꽃 사진을 보는 순간 마법처럼 순간이동을 한다. 애인을 만나러 가기 때문이다.나와 연애를 하는 기분을 느낀다. 연애를 시작하면 상대의 취향이 전적으로 중요해진다. 좋아하는 음악을 같이 듣고, 좋아하는 음식 그리고 모든 것을 함께 하고 싶기 때문이다.
연애를 하다 보면, 맞춰주는 쪽이 손해 본 것 같지만, 자로 재기 시작하면 로맨스는 사라진다. 나와 꽃을 좋다는 나는 여전히 연애 중이다. 나는 그녀의 취향에 빠진 채 올해도 잘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