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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쌍 Mar 14. 2021

툭하면 김밥을 싼다

김밥 싸는 법

  김밥을 아주 좋아한다. 월급이 시절 은박 포일을 싼 김밥 한 줄을 사들고 출근했다. 모닝커피와 함께 먹던 김밥은 하루의 시작이었다. 단골 집이 따로 없어도 김밥은 어디서 비슷한 맛이었다. 자취를 오래 하다 보니 아침에 먹기엔 김밥만 한 것이 없었다.

  이제는 엄마가 집에서 김밥을 싼다.  끼니때   . 냉동실 늘 김을 두고, 그때그때  냉장고에 있는 재료로 김밥을 만들어 먹였다. 딱히 뭘 해먹 일지 계획이 없을 땐 김밥이 구원투수다.

주말 점심 단골 메뉴 김밥

   남편은 접시 위에 올려진 김밥을 보며 먹기 힘든 음식을 툭하면 한다고 신기해한다. 어린 시절 소풍을 가야 엄마의 김밥을 맛볼 수 있었다. 동생들이 소풍을 가는 날엔 덩달아 김밥을 먹는 기분이 좋았다. 도시락 통에 채워진 김밥은 일품요리 같았다.     


  엄마 김밥엔 시금치가 꼭 들어갔다. 고소한 참기름을 발라 통깨를 뿌리면 향긋함에 손이 계속 갔다.

  이젠 친정집에 가면 엄마가 김밥을 해달라고 하신다. 소풍을 가지 않아도(^^;) 김밥을 자주 하는 걸 아셨기 때문이다. 제주엔 제주 단무지가 있다. 돌하르방이 그려진 팩에 제주산 무로 만들어진 단무지가 담겨있다. 그리고 항상 제주 당근을 볶아서 넣는다. 살을 싫어하시는 엄마는 야채가 듬뿍 들어간 김밥을 말아드렸지만, 시금치가 없으면 섭섭해하셨다.

  아이들 김밥엔 햄이 꼭 들어가야 한다. 햄을  두 개씩 넣은 날은 엄마의 사랑 두배라고 느끼 듯 맛있어한다.  막내는 꼬마김밥을 좋아하고 큰애는 오이가 듬뿍 들어간 걸 좋아한다.

  남편을 위한 김밥엔 치즈를 반드시 넣어야 한다.  작스 참치 김밥을 요구하기도 하지만 사둔 참치 통조림이 있다면 너그럽게(^^) 추가해주기도 한다. 가족들의 맞춤 김밥이 준비가 되면 마지막 김밥을 싼다. 남은 재료를 모두 넣어서 왕김밥을 만든다. 남은 청도미나리를 잔뜩 넣었더니 미나리 향이 코에서 정수리까지 뚫고 지나간다. 그런데 먹다 보니 맛에 뭔가 빠졌다. 남은 재료를 넣어 만들었으니 빠진 게 당연지만 정말 중요한 것이 빠졌다.

  '단무지'였다. 단무지 모자라지도 않았는 깜박하고  빠뜨렸다. 단무지 없는 김밥이라니, 빠진 단무지를 곁들여 먹었지만 맛이 따로 았다. 김밥은 한꺼번에 입안에서 씹으며 느껴지는 맛이 있는데 말이다.


  SNS에 올라오는 먹음직스러운 김밥 사진들을 보며 그녀들의 솜씨에 감탄하기도 한다. 게다가 게시글엔 만든 사람의 애정이 보인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김밥엔 정성이 많이 들어간다. 누군가를 위한 특별한 음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드는 동안 기분을 좋아지게 하는 것이 아닐까? 김밥을 자주 만들지만 한 번도 귀찮다는 기분을 느낀 적이 없다. 김밥을 맛있게 먹는 가족들을 보면 금방 뿌듯해진다.


  얼마 전에 아이가 물었다.

"엄마 소풍 하면 떠오르는 음식이 뭐야?"

 아이가 정말 몰라서 묻는지 궁금했다

 "몰라?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음... 컵 라면?"


  "김밥이잖아!"

  

  아이가 원격 수업시간에 소풍 하면 떠오르는 음식을 말해 보라고 했는데,  대답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맙소사!

 끝까지 아이는 김밥이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데믹 때문에 소풍 간 기억이 가물거렸다. 그러고 보니 아이는 유치원 소풍에 김밥을 한 번쯤 싸서 다. 선생님 것도 싸 달라고 해서 기억이 난다. 그 후로 소풍엔 유부초밥  싸 달라고 해서 줄곧 그렇게 해줬다. 초등학교에 다니며 대부분 중식이 포함된 현장학습을 갔다. 그러니 가족 소풍을 가던 한강공원이나 가족공원에서 먹은 '컵라면'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김밥이 먹고 싶어 소풍 가는 날을 기다리던 마음이 남아 있어 내가 인정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팬데믹과 미세먼지로 맘 놓고 소풍을 가던 일이 까마득하지만 김밥은 우리 집 단골 메뉴다.

 또 김밥을 말았다. 그리고 컵라면 대신 라면을 곁들였다.  

 

  나 혼자 먹으려고 김밥을 사던 날이 가물가물 해졌지만, 각각 다른 김밥으로  가족에게 사랑을 표현한다.

 한 번도 김밥 싸는 법을 배운 적 없지만, 사랑이 그리웠던 마음을 돌돌 말아 꼭꼭 싼다. 그래서 자꾸만 김밥을 싸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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