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역할을 할 때는 시간이 느리게 간다. 지루하기도 지치기도 한다. 그래도 항상 나쁘지만은 않고 늘 손해 보는 것은 아니다.우울한 날에는 잘생기고 예쁜 배우가 나오는 드라마 예고편만 봐도 상큼해진다. 그런데 텔레비전은 늘 만나기 힘든 애인 같다. 장거리 연애하는 연인처럼 만나려면 작정을 해야 한다. 그래서 늘 만날 날만 기다린다. 오랜만에 영화 한 편을 보려고 골랐는데 아이가 오랜만에 밤잠을 설치게 했다. 학교 적응 기간을 무사히 넘기나 싶었는데 몸살이 났다. 요 며칠 동안 학교에서 돌아오면 낮잠을 자더니 결국 아파버렸다. 장거리 애인을 만나는 건 실패했다. 기회를 또 만들어 봐야 한다.^^;
"당신이 가장 잘하는 건 뭐예요?"라고 묻는다면 망설이지 않고 '참는 거요'라고 할 것이다. 엄마가 되면 참는 것에 아주 달인이 된다. 기다리는 것과 참는 것은 좀 다르다. 무작정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보다는 버텨내는 힘을 써야 한다. 기다리는 건 마트 계산대 줄이 길게 늘어진 상황 같은 것이다. 차례를기다리며짜증 나기 시작한다. 금방 줄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줄을 잘 못섰나 싶기도 한다. 이런 줄 서기 기다림은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반면 참는 건 아이들을 키우다 발견한 놀라운 능력이다. 경험이 여러 해 쌓이면 연륜의 힘이 발현된다. 엄마로 연차가 많아지고 아이들이 많아질수록 더 강력해지는 듯하다. 예전에 아이 넷 엄마한테 정말 자애로운 느긋함을 본 적이 있다. 아이들이 모두 마트에서 과자를 고르면서 한꺼번에 쏟아지는 말에도 웃으며 하나하나 모두에게 편안히 반응을 한다. 게다가 나와 가벼운 수다도 하면서 미소 띤 얼굴로 아이들이 스스로 적당한 것을 결정하게 다독였다. 그녀에게 비법을 묻자 "애 넷을 키우면 이렇게 돼요." 라며 웃었다.
풀또기꽃 일주일만에 피었다
풀또기 나무에 분홍색 구슬이 동글동글 달렸다. 일주일 내내 그 모습 그대로였는데 드디어 꽃송이가 피었다. 꽃은 보고 싶다고 재촉한다고 꽃이 서둘러 피지는 않는다. 올해 벚꽃이 예상보다 일찍 개화했다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벚꽃 개화시기를 예측한다고 하지만 항상 못 맞추는 듯하다. ^^:풀또기 꽃봉오리도 금방 필 듯하더니 일주일 넘게 피지 않았다.꽃이 때가 되면 피듯이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걸 알면서도, 어느 순간 아이들을 다그치며 재촉하고 있었다.
"어서 자렴, 어서 학교 가렴, 어서 먹으렴", 늘 "어서어서"가 몸에 배었던 나였다.
그런데 아이들은 때가 되면 배고프다고 하고, 때가 되면 졸려한다. 기저귀도 어느 정도 하면 알아서 그만 하고 싶어 하고, 혼자 할 수 있는 것을 스스로 말을 했다. 학교에 가서 공부가 뭔지를 알고 친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그런 일들은 엄마에게도 일어났다.애가 감기가 걸려도 고열이 없이 콧물이 나면 시럽을 먹이고, 음식을 더 잘 먹인다.목이 아프다면 해열제를 준비하고 열이 심하면 해열제를 먹였다. 그래도 3-4일 이상 차도가 없으면 병원에 데려간다. 그마저도 독감이 유행하는 계절만 해당된다. 흔한 장염도 걸리면 구토가 진정되기를 지켜보며 하루는 금식시키고 다음날부터 물을 조금씩 먹이고 나서 죽을 먹였다. 감기가 같이 오거나 고열도 같이 동반한 경우가 아니면 병원부터 찾지 않았다. 병도 나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한 번은 아이가 목이 아프다 더니 39도가 넘게 심한 고열이 났다. 해열제를 먹이고 아이의 귀가 빨게 지도록 계속 열을 쟀다. 약을 먹고 20분이 지나야 효과가 나오는데 미련한 엄마의 걱정 때문에 아이 귀만 아프게 했다. 약을 먹은 아이는 15분 정도 지나자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차분해졌다. 체온은 37도 가까이 떨어져 갔다.초보 엄마 시절엔 겁이 많고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날 것 같았지만, 점점 참아내는 것과 친해진다.
음식 할 때도 마찬가지다. 고기도 맛술로 잡내를 잡고 양념을 재어두어야 한다. 밥도 뜸을 들여야 하듯이, 삶는 고구마도 불을 끄고 잠시 뜸을 들이면 훨씬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시간이 남았네!' 요즘 자주 하는 혼잣말이다. 엄마가 되면 시간은 느리게 가지만, 시간 쓰는 법을 알아 가게 된다. 집안일을 하고 다음 식사 시간이 오기 전까지 식탁에 앉아 글을 쓴다. 청탁을 받은 글이 아닌데도 일을 하듯 거창하다.
날마다 작가 코스프레를 한다. 글쓰기를 하지 않는 시간은 집안일을 하고 남편과 아이들을 챙긴다. '아직 하교시간이 아니네!', '저녁 하려면 멀었네!'를 외치며 글을 쓴다. 하루를 길게 펼쳐놓고 사이사이 엄마 노릇을 하며 하루 종일 글을 쓴다. 그렇게 엄마의 시간은 느리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