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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쌍 May 05. 2021

날마다 삼시 세끼

음식 하는 마음


  가족에게 뭘 먹여야 할지 선택하는 건 엄마의 큰 일이다.  그 선택에 자신이 없어질 때가 수시로 온다. 그래도 식사를 거를 수는 없다. 요리가 힘들 때면 식당 음식이 간절하다. 누군가 차려주는 음식이 그립지만, 아쉽게도 덕 볼 구석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갑자기 들이닥친 펜믹에 쉴 틈 없이 집밥을 차 한동안 짜증이 나고 귀찮다. 날마다 주말처럼 온 가족의 식사 메뉴 고르고, 곁들일 반찬을 만들어 내는 일은 멈추지 않았다. 그래도 언제나 믿을 구석은 마트뿐이다. 

  냉장고 문을 열듯 자주 마트를 간다. '아무거나' 먹겠다는 가족들의 동의보다는 각자에게 먹고 싶은 반찬을 주문받아 가는 길은 너무 반갑다. 아이들이 돈가스 먹고 싶다고 했다. 고기를 잘 먹지 않으려 하지만 돈가스만큼은 좋아한다. 전에 푸드코트에서 먹은 돈가스가 생각났는지 돈가스 소스를 뿌려먹고 싶다고 했다. 마트 진열대에 수많은 소스들을 보며 이렇게 '돈가스 소스가 많았구나!' 그런데 그동안 케첩에만 찍어먹으라고 해서 미안해졌다. 
 아이가 돈가스를 소스에 찍어 먹어보더니 "이거 꼭 식당에서 먹는 맛이야!"라고 했다.
 밖에서 식사를 한 게 까마득했는데 오랜만에 가족 모두가 맛있게 먹을 수 있다니, 소스 돈가스집 맛을 느끼게 해 줘서 단골가게 하나 알아둔 것만큼 안심이 되었다.


  아이들이 함께 등교 수업을 간 날이었다. 남편은 아이들이 없으니 점심 별식을 먹고 싶어 했다. 마트에서 콩나물 한 봉지와 쫄면 만들기 세트를 사 왔다. 콩나물을 깨끗이 씻어 데치고 쫄면을 삶아냈다. 냉장고에 있던 양배추와 깻잎, 오이를 채 썰어 쫄면 위에 올리고 콩나물 듬뿍 넣었다. 프라이팬에는 쫄면과 곁들일 김말이 젓가락으로 굴려가며 튀기듯 구워냈다. 쫄면 소스를 몇 번 만들었다 실패하고 나선 마트표를 사 온다.

  매콤한 소스는 콩나물과 쫄면을 함께 씹다 보면 고단했던 일도 싹 사라지는 듯 개운함이 느껴진다.  김말이 튀김에 쫄면을 돌돌 말아서 먹다 보니 금방 그릇이 비워졌다. 쫄면 만들기 세트는 잊을 만하면 들러서 먹는 식당처럼 리 부부의 단골 메뉴가 되었다.  


  어김없이 주말이 돌아왔다. 원격 수업마저 없는 한가한 날엔 아이들이 피자나 치킨을 찾는다. 특히나 치킨을 사랑한다. 그런데 시중에 파는 치킨은 맵다고 잘 먹지 못해서 생닭을 사다가 튀김가루를 입혀 튀겨줬다. 엄마표 치킨은 매번 아이들의 평가가 너무 까다로워 엄마의 수고로움은 빛을 보지 못했다.

  또 치킨이 먹고 싶다고 졸라대자 생닭을 사러 나갔다가 냉동 치킨을 들고 왔다. 치킨이 튀겨지는 냄새가 좋았는지 아이들이 궁금해했다.

"이건 새로운 치킨집이야, 먹어봐!"

  막내가 조심스럽게 한입 베어 물더니  

"엄마! 지금까지 먹어본 치킨 중에 제일 맛있어. 하나도 안 맵고 부드러워! 엄청 맛있어"

"정말?"

 단골 치킨가게를 하나 찾았으니 한동안 생닭을 손질할 일을 없을 것 같다.


  동네 마트 주인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XX 엄마 요리 잘 못하지?" 계산대에서 농담 삼아한 말 같기도 했지만 얼굴이 빨개지며 대답하지 못했다. 꼭 숨겨온 비밀이 탈로난 듯 창피했다. 그리고 얼마 뒤 새로운 마트가 생기자 발걸음을 끊었다.

  친정엄마에게 밥상을 차려드렸는데,  "네 동생은 뚝딱하면 음식 잘하는데."라며 잘 드시지 않았다. 엄마는 직접 음식을 해드리는 것보다 사드리는 걸 더 잘 드신다. 그동안 요리를 못하는 건 솜씨가 없어서 라고만 생각했었다.

 요리라면 자신감이 떨어진다. 

트에서 사 온 식료품은 떨어진 자신감을 되살려 주듯 여러 가지 음식을 시도하게 했다. 내가 못하는  누군가에게 '대신 좀 해주세요.'라고 도움을 구한 듯하다. 도움이 필요해도   혼자 낑낑거리며 살았나 싶었다. 로운 음식을 시도하며 묘한 해방감이 들기 시작했다.


  한 TV 프로그램에 나온 장면이다. 사위는 장모가 만들어준 겉절이언제나 술술 넘어간다며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장모가 오랫동안 감췄던 비밀을 털어놓았다. 음식을 잘 못하지만 사위에게 맛있는 해주고 싶었다며, 겉절이는 사 온 것이라고 했다. 장모가 자신을 위해 12년 동안 같은 집 겉절이를 사 온 걸 알게 된 사위는 눈물을 흘렸다. 자신을 챙겨주려는 마음에 감동을 받은 것이었다.

 음식은 맛으로만 전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도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음식은 마음으로 하는 일이 있었다. 반찬 가지 수 보다 마음을 담아내는 것이 더 풍성한 밥상이 되었다. 잘 맞는 짝꿍을 만나면 수다가 즐겁듯이 꼭 맞는 요리를 짝지어 차렸다.

  많은 반찬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선택한 메뉴에 맞게 간단하게 제대로 맛을 내는 것이 필요했다. 음식에서 마음이 전달된 날은 가족들의 음식 씹는 소리에 '맛있다'라는 말이 절로 들렸다. 음식을 전부 직접 하지 않았지만 ,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펜데믹이지만 식당을 고르듯 입맛에 맞는 단골 메뉴를 고른다. 단골 메뉴가 늘어갈수록 밥상 차리는 기분도 한결 가벼워졌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날마다 외식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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