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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쌍 May 17. 2021

먹기 어려운 제주 하귤이 택배로 왔다

제주 하귤

  오월 제주엔 감꽃이 향기로울 것이다. 고향에 가본 지가 오래지만 감귤밭에 벌어지는 일들은 계절 따라 상상이 된다. 꽃이 면 귤이 얼마나 달릴지 기대가 커진 아빠의 얼굴이 날마다 싱글벙글 달덩이가 되셨다. 봄비가 자 내리면 할 일이 많아졌지만 귤밭엔 공처럼 부풀어지는 귤이 있었다. 바로 하귤이다. 어려서는 나스 미깡이라는 일본식 이름을 불렀지만 지금은 다들 하귤이라고 한다.

  

 하귤 한 박스 택배로 보내신다며 제주에서 전화가 왔다. 마당에 하귤나무가 잘 열려서 나누어 먹자고 보내셨다는데, 갑자기 속이 매슥거렸다. 입덧할 때가 떠올라서 그랬나 싶다. ^^; 사실 하귤은 입덧하는 임산부에게 정말 고마운 과일이다. 제주에선 입덧하는 임산부가 있으면 동네 하귤이 그 집으로 배달된다. 어렸을 때도 하귤을 찾는 전화가 오면 어느 집 아기 엄마가 입덧한다며 아빠는 몽땅 따서 갖다 주곤 하셨다.

 첫 아이를 가졌을 땐 빨간색 과일만 먹고 싶었는데, 둘째를 가질 땐 하귤이 너무 먹고 싶었다. 입덧을 한 여름에 하는 바람에 하귤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어렵게 구한 하귤 덕분에 귀여운 아이도 만나게 되었다.  


  하루 만에 택배가 도착했다. 박스를 여니 제주의 여름 기운이 가득 들어 있는 듯했다. 하귤은 지금부터 6월까지 수확한다. 하귤나무는 정원이 있는 집이나 귤밭이 있다면 정원수처럼 키우는 나무다. 먹는 방법은 따서 바로 먹거나 손질해서 냉동실에 넣어 두었다가 음료수를 만들어 먹는다. 요즘은 청을 담가서 먹는다고 하는데 나는 그냥 먹는 게 좋다. 많이 열리지 않아도 하귤 하나는 웬만한 과일 한 바구니처럼 그득하다. 실제로 잘 자란 하귤은 성인 얼굴만 하기도 한다.

택배상자를 열어보니 중간 크기의 하귤이 들어있었다.

 하귤은 묵직한 만큼 껍질도 두껍다. 워낙 딱딱해서 맨손으로는 껍질을 벗기지 못한다. 입덧할 때 먹고는 한참을 입을 대지 않아서 인지 얼른 먹고 싶지 않았다. 놀랄 만큼 시큼하고 씁쓸하기 때문이다. 자몽과 레몬과 한라봉이 섞인 맛이라고 할까? 단맛과 나는 씁쓸한 맛은 워낙 독특해서 하귤을 먹어야 즐길 수 있기도 하다. 게다가 까서 먹으려면 손이 많이 간다.

겉껍질을 칼로 잘라면 속껍질이 보인다.

 먼저 단단한 껍질을 칼로 그어서 벗겨낸다. 벗겨낸 속엔 하얀 스펀지가 감싸고 있는 듯 도톰한 속껍질이 있다. 이 속껍질을 다 벗겨내야 먹을 수 있다. 보기엔 하얀 껍질이지만 맛은 머리가 아플 정도로 쓰다. 속 알맹이가 나오면 또 남은 건 씨앗이다. 씨앗은 레몬 씨앗처럼 쓰디쓰다. 씨앗이 섞여 잘 못 씹으면 입안에 것을 모두 뱉어내야 한다.

겉껍질, 속껍질, 씨는 모두 버려야한다.

  한가로운 월요일을 보내고 싶었지만 제주에서 온 선물 덕에 온종일 하귤 까기를 했다. 하귤 속에 알맹이만 얼려두었다가 에이드를 해먹을 생각으로 한 상자를 모두 정리했다.  안타깝게도 식구들은 아무도 하귤을 먹지 않는다. 온전히 나만의 간식인 샘이다.^^;  더운 날 하귤 향이 듬뿍 담긴 씁쓸하고 시큼한 알맹이가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상상을 하니 입안에 금방 침이 고였다.  

상자안 하귤은 봉지에 담겨 냉동실로 직행했다.

 입덧하는 산모가 없는 고향 동네는 하귤도 먹을 사람이 귀한 듯하다. 동네 어른들이 나누어 먹기도 많다 싶으셨는지 내 앞으로 한 상자가 왔으니 말이다. 하귤 까기가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고향생각을 하느라 좀 오래 걸렸다. 어린 시절에 하귤을 받으러 왔던 배가 부른 아주머니들의  얼굴도 가물거리고, 젊었던 아빠 얼굴도 어른거렸다.

  씨앗을 발라낼 때마다 임신 중에 먹었던 생각이 나서 그런지 속이 이따금씩 울렁거렸다. 고향의 어른들은 오월부터 늦여름까지 하귤을 먹는다. 특히 엄마인 제주 여자들은 여전히 하귤을 먹는다. 입덧을 하지 않아도 이 맛을 잊을 수가 없어서는 아닐까? 하귤 선물 덕분에 이번 여름이 더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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