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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쌍 May 27. 2021

내가 좋아하는 하얀 밥이다

흰쌀밥의 맛

  생일날이었다.

 "흰쌀 밥해주세요." 생일날을 핑계로 매일 잡곡밥만 하는 엄마에게 하는 특별한 주문이었다. 보통 명절이나 제삿날이 아니면 흰쌀밥을 하지 않으셨다. 날마다 먹는 잡곡밥 말고 흰쌀밥이 너무도 먹고 싶었다.

  갖지은 밥에서 나는 밥 냄새는 금방 입에 넣어도 사라지지 않고 입안으로 들어다. 작은 밥 알갱이들이 혀에 닿으면서 달콤한 사탕처럼 녹았다. 천천히 밥을 먹으며 입안에서 번지는 단맛 때문에  밥만 먹어도 맛있는 음식을 먹은 듯 좋아지는 기분도 덤처럼  따라왔다. 해마다 생일날이 오면 미역국 말고 흰밥을 해달라고 했다.


 자취를 하면서 먹은 밥은 대부분 흰쌀밥이었다. 주로 전기밥솥으로 밥을 지어먹었다. 취사와 보온 버튼만 있는 작은 솥은 밥을 하는 동안 솔솔 고소하고 먹음직스러운 연기를 피웠다. 금방 뚜껑을 열 때가 가장 하이라이트다. 흰쌀밥이 낼 수 있는 모든 빛깔과 촉촉함이 눈에 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 공기를 충분히 떠서 담았는데 밥을 먹다가 만 듯 부족하기만 했다. 여러 번 밥을 떠서 먹어야만 달콤한 유혹이 채워졌다.

 며칠 집에서 밥을 먹지 않아 오랜만에 밥솥을 열어 보니 밥은 살짝 노랗고 아무런 냄새가 안 났다.  밥을 입안에 넣었지만 설탕처럼 달콤한 맛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전기밥솥의 밥은 늘 그렇게 3일을 못 버티고 변해버렸다. 달콤함이 사라지고  말라버린 밥은 깻잎 무침이나 장조림 같은 짭조름한 반찬이 위로해줬다.


  엄마가 되고 가족을 위해 여러 가지 밥을 다. 보통은 흑미 찰밥을 하거나 기장 쌀밥을 한다. 콩밥은 가장 인기가 없고, 현미밥은 얼굴에 불편한 기색을 확실하게 드러낸다. 나는 진밥보다는 살짝 고슬밥이 좋다. 아직도 물을 잘못 맞춰서 설익은 밥이 되기도 하지만 흰쌀밥을 할 때만큼은 고슬밥을 한다. 설탕을 녹여 만든 알갱이 같은 쌀알들이 입안에서 굴러다니며 단맛은 입안에서 흥분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밥도 흰쌀밥이다. 반찬이 딱히 없을 땐 조미김과 배추김치는 환상의 짝꿍이다.

흰쌀밥이 그릇에 담긴 걸 본 아이는  "내가 좋아하는 하얀 밥이다. "라며 좋아했다.

 

 요즘은 찹쌀에 도움을 받아 흰밥을 짓는다. 고슬고슬한 밥이지만 쫀득한 식감을 위해서다. 가장 맛있는 흰쌀밥은 갓 지어 피어오르는 연기도 새하얗다. 그때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이 또 있다. 서둘러 입에 넣고 싶어 벌써 침이 올라와 고이기 때문이다. '후' 불어 한 김 식힌 밥을 입에 넣는 행복의 맛이다.


식혜를 만들기 위해 흰쌀밥을 지었다

 아이 둘을 낳고서야 비로소 내 맘대로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동안 제법 많은 시행착오를 했기 때문 일지도 모른다. 엄마가 된다는 건 어떤 밥을 지을지 내키는 대로 결정하기도 하지만 가족들이 좋아하는 흰쌀밥도 번갈아 만들어야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나 역시 흰쌀밥을 좋아한다는 걸 인정하게 했다.  


 뭐든 버리기 아까워하는 나는 자취할 때 쓰던 전기밥솥을 아직 갖고 있다. 물론 밥을 해 먹기 위해서 쓰지 않는다. 다른 용도가 생겼기 때문이다. 지금 오래된 전기밥솥에선 흰쌀밥이 변신 중이다. 알알이 밥알이 내어준 달콤함이 고스란히 엿기름과 만나 식혜를 만드는 중이다.  식혜가 만들어지면 단물은 모두 뽑아낸 알은 가벼워진다. 밥알 없는 식혜는 상상이 안된다. 그래서 식혜 안에 들어 있는 밥알은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먹는다. 달콤한 흰쌀밥은 만큼 식혜의 밥알은 긴 시간 인고의 맛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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