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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쌍 Apr 22. 2021

커피 타며 봄도 탄다

커피의 맛

 쓴맛을 좋아한다. 떫고 쌉싸름한 맛을 내는 음식을 대부분 즐겨 먹는다. 가끔  익은 감 떫은맛도 웬만해선 참고 먹는다. 어려서 할머니와 자라며 먹은 음식들 때문인지 쌉싸름한 맛이 익숙하다. 할머니가 주셨던 것들이 다 그런 맛이었다. 도라지의 쓴맛, 쑥의 달큼한 쓴맛, 흰 무의 단맛 섞인 쓴맛, 토토리묵의 뭉한 떫은맛, 무청의 씹히는 쓴맛 같은 것들이다. 차를 마시기 시작하고는 녹차의 고급진 쓴맛도 좋했다. 하지만 쓴맛 중에 가장 좋아하는 건 따로 있다. 바로 커피다.

 

  쓴맛을 그렇게 좋아하는 커피를 마다 할 수 없었다. 처음 커피를 맛보고 깜짝 놀란 건 쓰고 탄맛이 나며 은 듯한 단맛 신맛이 느껴졌다는 것이다. 그중에도 커피 맛은 단연코 쓴 맛이다. 주로 믹스커피나 인스턴트커피를 뜨거운 물에 타서 마신다. 의사가 믹스커피는 마시지 말라고 해, 십 년 전에 끊었지만 펜데믹 핑계로 가끔씩 마신다. 족들이 집에 머물 시간이 많아져 집안일임없이 괴롭히니 달콤한 맛이 그리워질 때가 많았다. 후 서너 시경에 마시는 달달한  커피 한잔은 빠르게 지친 몸을 달래주었다.


 한동안 바리스타가 만든 브렌딩 한 원두커피를 얻어 마셨다. 잠시 동안 호사를 누렸가장 맛있는 커피였다. 남편은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고 나더니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맛있었커피 마실 기회는 사라졌고, 가끔 페에서 아메리카노를 는데 요즘은 그마저도 못하고 있다.

커피 타며 봄도 탄다

 싱숭생숭, 몸 어딘가가 구멍이  듯 자꾸만 작아진다. 풍선이라면 바람을 불어넣으련만, 몸 어디에 구멍이 났는지 찾을 수가 없다. 책을 나와 꽃을 보며 시간을 보내지만 뭔가 허전하다. 그 이유를 가장 잘 아는 내편이 알려준다.


"봄이잖아! 봄 타는 거지."

   사진만 찍느라 정작 봄이 온 걸 잊었다. 봄을 느끼는 시간을 갖지 못했으니 봄 타야 하는 걸 잊어버린 샘이다. '그래서 자꾸 커피가 마시고 싶었구나!'

 쉼과 여유를 부리며 봄을 타고 싶었던 것이다. 커피 한잔을 앞에 두고 떠오르는 대로 생각이 이리저리 달아나게 두었다가 쓴 커피 한 모금에 다시 돌아오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을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3 시절 학도서관에서 몰래 마시던 설탕 커피맛이 기억났다. 학교에 유일하게 있던 커피 자판기엔 율무차와 설탕 커피 있었다. 그때 마신 설탕 커피는 저절로 눈이 감겼던  야간 자율학습시간의 잠을 쫓아 줬다. 설탕이 들어갔다지만 입안에서 맴돌던 쓴맛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도서관 창문  티나무들이 울창하게 자라고 있었다. 아직 학과도 정하지 못해 막막하기만 했고, 무엇을 해야 할지 앞은 보이지 않았다. 곧 나가야 할 세상을 모른 척 잠시 가려고 싶어, 느티나무 뒤에 숨어 쓴 커피를 마셨다


  마흔 나이도 지났고, 아이들은 학생이 되었다. 엄마 노릇도  한 단계를 넘어선 기분이다. 게 핀 자목련도 지고 있고, 겹벚꽃도 벌써 끝물이다. 이젠 철쭉이 주인공이다. 조금 있으면 여름 야생화들이 피어날 것이다.  사방에 꽃이 넘다. 싱숭거리는 마음을 그대로 느끼고 싶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모든 핑계를 봄 타는 걸로 정으니 맘 놓기로 했다. 뜨거운 커피 한잔을 타고 한 모금을 마시며 중얼거렸다.

" 나 봄 타나 봐!"
겹벚꽃과 자목련 @songyiflower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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