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쌍 Apr 18. 2021

먹는건 좋은데 요리는 어렵다

어쩌다 주부

   결혼안 해도 큰일아니라고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다. 딸인 내게 직업을 갖고 상살이를 하길 바라셨다. 그래도 결혼생활이 궁금하다면 마흔 정도지는 혼자 살고, 그때 만나는 남자가 있거든 한번 살아보라고 하셨다. 같은 집 말고 옆집에서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버지 같은 아버지는 없는 듯하다.

 집으로 남자 친구(애인이 아닌 남자 사람 친구)가 날 찾는 전화가 와도 바꿔주지 않고, 집에 없다며 전화를 끊으셨다.  한 번은 같은 동네 사는 친구와 걸어오는 길이었는데 인사하는 이성 친구를 모른 척하고 대문을 앞에서 닫고 들어가 버리셨다. ^^;

  한마디로 아버지는 내가 남자 사람을 만나는 걸 아주 싫어하셨다. 그래서인지 현모양처가 될 생각은 꿈도 꾸지 않았다. 특히 요리 잘하는 손맛 좋은 아내는 더욱 아니었다.


 엄마가 외출하시면 아버지가 직접 음식을 하셨다. 엄마는 평소에  딸인 나에게 밥상 차리는 걸 도우라고 했지만 아빠는 그런 적이 없다.

  아버지가 만들어준 음식들 중에는 투박하고 신기한 게 많았다. 마가린으로 바삭하게 식빵을 구워서 꿀을 찍어 주셨다. 단둘이 있는데도 식빵은 늘 한 줄을 몽땅 구워서 탑처럼 쌓아 오셨다. 빵이 없을 땐 밀가루에 우유를 넣고 소금 간 한 반죽을 고소하게 팬케이크처럼 구워서 설탕을 뿌리고 층층이 쌓아 올려 간식으로 주셨다.

 김치와 돼지고기를 볶아 밥에 비벼 먹거나, 간장 소고기 덮밥에 같은 것도 해주셨다.  한 그릇 음식은 반찬 없이도 늘 맛이 좋았다. 덮밥엔 늘 반숙 계란을 올려주셨는데 참기름이 뿌려진 노른자를 아껴가며 비벼먹었다. 끔은 냉동실에 낚시로 잡아온 우럭을 꺼내 조림은 해주셨는데, 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우럭 조림과 밥이 다였는데  배가 부르게 먹다.


  결혼을 하고 나서 가장 힘들었던 건 식사 준비였다. 남편은 흰쌀밥을 먹고 싶어 했고, 나는 잡곡밥을 좋아했다. 남편은 국이 있어야 고 나는 국이 필요 없었다. 남편은 고기반찬을 나는 나물 반찬이 꼭 있어야 했다. 그래도 그럭저럭 부부 상차림에 익숙해졌다. 남편은 국을 잘 안 먹게 되고,  흰쌀밥과 잡곡밥을 번갈아 했다.


 아이들이 있다는 건 또 다른  상차림을 연습하게 했다. 어른용 아이용 유아용 반찬을 같이 만들어야 고, 간식을 늘 상비하거나 쉽게 만들 수 있어야 다. 날마다 메뉴 걱정은 엄마들의 단골 대화 주제였다. 놀이터에서 만난 엄마들은 늘 말끝에 하는 공통 질문이 있다.

 

" 오늘은 뭐해먹을 거야?"

" 요즘 반찬으로 뭐 드세요?"

" 저녁은 뭐 할 거야?"

 그중에 미리 메뉴 준비가 된 엄마가 웃으면서 말을 한다.

"아침에 불고기 해놨어."

  나머지 엄마들은 각자 냉장고를 살핀다. 엄마들은 집 밖에 있어도 머릿속으로 냉장고 문을 열고 뭐가 들었는지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그리고 마트로 가는 엄마, 집으로 가서 냉장고 속 재료로 식사 준비를 하는 엄마, 여전히 메뉴 걱정을 하는 엄마로 나뉜다. 나는 여전히 메뉴 걱정을 하는 편에 속했다.

  

  먹는 것은 좋아하지만 요리는 매번 어렵다. 돼지갈비를 만들어도 매번 조금씩 맛이 다르다. 그래서 내가 만든 요리는 늘 맛이 있을 때와 먹을 만할 때가 번갈아 일어난다. 그나마  십 년을 넘는 주부생활로 쌓인 반복 실습이 요리의 기본은 하게 된 듯하다. 식사 준비를 할 때는 항상 긴장이 된다. 늘 자신 없고 항상 걱정이 된다. 가족들의 건강을 위한 제철 밥상은 두말할 필요가 없이 중요하고 사온 식재료들을 기한 내에 요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끼니때마다 늘 도망가고 싶어 진다. 오늘도  야심 차게 준비한 간식에 아이들은 손도 대지 않았다. ㅜㅜ

인기 없던 비스켓 빵

   아버지가 만들어준 간식은 여전히 그리운 맛인데, 언제쯤 내 아이들도 그런 간식인 듯 먹어주려나? 밥으로 만들어준 볶음밥을 맛있게 먹는 아이를 보니 그나마 위로가 된다.

  음식 조리가 어려울 땐  반조리 식품의 도움을 좀 받기도 하고, 가족들을 생각하며 레시피에 정성을 더 해보기도 한다.

 아이들 간식으로 만든 인기 없는 비스킷은 내일 아침 따뜻한 커피 한잔과 먹기 위해 남겨둔 것으로 정리했다.

TV에 나오는 요리 고수들은 한번 따라 해 보라며, 어렵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자꾸 만들다 보면 잘할 수 있다며 비법을 알려준다. 그럼 혹시 나도 요리를 따라 만들다 보면 언젠가 요리가 무섭지 않고,  꽃 한 송이처럼 사랑스럽게 느껴질 날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먹는 건 좋은데 요리는 여전히 어렵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럭 콩조림과 채송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