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가 먹이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산책을 하다 자연의 작은 조각을 발견하면 돌아갈 생각이었다. 더욱더 사소한 것들을 찾아내려고 한참을 서성거렸다.
온 사방이 나무가 있는 산책로에서 알 수 없는 힘이 나를 감쌌다. 무거워진 가지들이 초록 손이 되어 내 어깨를 만져 주는 듯 뭉친 어깨가 개운해졌기 때문이다.
어느새 꽃을 다 떨어뜨린 나무는 다시 나무가 되었다. 산수유는 줄무늬가 선명하게 이파리를 만들었고, 개나리는 초록 담장이 되었다. 맨 먼저 핀 매화꽃은 대롱대롱 매실을 살찌운다. 단풍나무와 느티나무 그리고 은행나무도 모두 꽃들을 떨어뜨린다. 초록잎만 남은 나무들은 서로 비슷한 모습으로 시험을 내듯 자신이 누군지 알아내라고 하는 건처럼 시선을 붙잡는다.
벚꽃나무는 바로 옆에 느티나무와 다를 것 없이 잎으로 무성해졌다. 얼핏 보면 얼마 전까지 연분홍 꽃비를 내렸던 벚꽃나무를 찾을 수 없었다.
지난 봄비가 벚꽃을 다 떨어뜨렸지만 나무는 안주머니에 열매를 만들 가지를 숨겨두었나 보다. 가만히 올려다보니 벌써 여문 버찌들이 동글동글 가득 달렸다.
자연을 가까이하면서 감수성은 다른 색으로 변했다. 회색과 검은색 사이의 우울감은 점점 새 하얗게 바뀌었다. 흰 공간에 줄을 긋고 글을 쓰며 겨울을 보내고 나니 초록잎처럼 자신감 같은 것이 자꾸만 생겨났다. 일종의 안도감같은 것일까? 글이 늘어갈수록 공허한 것들은 자연 속에서 피어났다.
딱딱한 줄기 속에서 겨우 나온 작은 싹일 뿐이었는데, 어느새 셀 수 없이 많은 이파리가 되었다. 나무들처럼 살아 있다는 생동감을 자연 앞에서 느낀다. 뾰족 거리는 잎은 실제로 손으로 만져보면 향긋하며 부드럽기만 했다. 나무에 핀 꽃은 코를 대고 맡지 못해도, 바람이 불면 꽃송이들이 눈 안으로 들어왔다. 꽃을 바라보며 끝을 향해 가는 시간을 본다. 꽃이 지고 나야 열매를 맺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열매를 맺는 것처럼 언젠가는 끝을 보고 싶다. 하지만 그 과정은 늘 인내심이 필요하다. 좋은 날도 있고 심술 나는 날도 있으니 항상 웃을 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산책길에 만난 나무들이 좀 더 기다려보자고 한다.
바람과 함께 느티나무가 조그만 꽃을 머리 위로 뿌린다. 꽃들은 떠나지만 나무를 더 살아 숨 쉬게 한다. 그런 야생 공간에서 잠시 내가 거기에 있는 것조차 잊었다. 모든 순간은 그렇게 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