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은 숨겨진다

비비추

by 무쌍

작은 것들이 모여서 우람하게 커진 모습이 좋다. 비비추가 어느새 먼지 날리던 빈 화단을 빼곡하게 채웠다. 지만 비추가 뿌리내린 바로 그곳에 얼마 전까지 다른 존재들이 함께 했었다.

지금은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이 비비추만 보인다. 누구에게도 알려지면 안 되는 비밀을 땅속에 묻어 감추듯 틈도 없이 비비추가 덮었다. 우연히 목격했던 그 숨겨진 세상이 나를 자극한다.


비비추 새싹이 막 올라오던 시간에 진한 보라색 제비꽃들이 그 틈에 피어있었다. 작은 보라색 꽃잎이 비비추 사이로 고개 내민 모습은 일주일도 보지 못했다. 금방 비비추는 숲으로 바뀌고 제비꽃에겐 어둠이 되었다. 제비꽃은 비비추의 과거를 아는 듯 속삭였지만, 컴컴한 곳에 끝내 갇혀 버렸다.

비비추 사이에 핀 제비꽃

제비꽃이 맥을 못 추듯 사라지, 목을 길게 내민 민들레 꽃송이가 뻗어 올라왔다. 좀 늦었다면 민들레는 꽃을 피우지 못했을지 모른다. 아슬아슬하게 비비추 잎 그늘이 완전히 만들기 전에 긴 꽃대를 올렸다. 며칠 사이 민들레는 두 송이 더 피었지만 비비추는 땅을 뒤덮어버렸다. 민들레가 갓털을 만들 때까지 버낼지는 기다려봐야 했다.

비비추 사이에 핀 민들레 꽃

비비추 화단은 미 순식간에 여백도 느낄 수 없을 만큼 빼곡해졌다. 푹신한 초록의 매트가 되어버린 틈에 제비꽃과 민들레가 있었다는 건 사진으로만 남았다.

봄날의 비비추는 힘차고 비장해 보이기까지 하다. 솟구치듯 삶의 욕구를 피워 올리는 모습은 뿌리내린 땅을 완전히 채우고 나서야 잠잠해진다.


제비꽃이 누군가에 의해 뽑힌 것도 아니고, 꽃을 모두 피우고 시든 것도 아니다. 마치 비비추가 자신의 숨기고 싶은 과거인 듯 덮어버렸다.

나도 모르게 야생화가 자연의 경쟁에서 사라지는 모습을 고 있었다. 자연에서 벌어지는 경쟁을 보는 것은 가슴을 서늘하게 했다. 비비추가 빼곡하게 채우느라 사라지게 한 꽃들은 다음 봄에 만날 수 있을까? 뜨거운 여름 장맛비에 젖은 비비추 꽃은 인상적이다. 그 꽃을 피우느라 사라진 꽃들이 있었던 것을 기억해 낼 수 있을까?

보라색 비비추 꽃이 피고 나면 계절이 바뀌고 가을로 지나갈 것이다. 그리고 겨울이 오면 초록잎은 갈색으로 변하며 바짝 말린 포푸리처럼 바스락 거리면 부서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비비추의 시작일 뿐이다.

비비추 @songyifl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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