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일락 향기로 두 달은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라일락

by 무쌍

수다스럽고 생각이 많아 글에도 티가 난다. 말이 많으니 글도 길어져 시인이 되는 건 엄두를 못 낸다. 자잘한 일상을 늘어놓고 구경하듯 글을 쓴다. 확실하지 않고 불편한 것을 싫어해서 기분이 나쁜 것들은 쉽게 잊지 못한다. 그래서 길가에 꽃을 보며 꿈꾼다. 꽃이 잠시 머물다 사라지듯, 불편한 기분도 해결해주리라고 말이다.

네만 산책해도 꽃들을 실컷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건 꽃 향기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라일락꽃 향기만큼 그윽하고 매력적이지 않지만, 풀내음도 꽃향기만큼 건강한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작은 야생화들은 향기가 거의 없는 꽃들이 대부분이지만, 각각의 향이 있다. 큼하거나 고소하거나 달콤한 자연스런 냄새가 있다.


지금은 라일락의 시간이다. 스크만 아니면 라일락 나무 아래서 킁킁거리며 활짝 핀 꽃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비 속에 핀 라일락꽃 나무 @songyiflower 인스타그램

하루 종일 내린 비에 주렁주렁 포도송이처럼 라일락꽃이 피었다. 우산 안으로 꽃송이가 들어오자 신기하게 향기가 코안으로 찾아 들어오는 듯했다.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보는 순간 향기가 바로 연상이 되었던 것이다. 비 내리는 화단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우산 속에 숨어 잠깐 마스크를 내리니 상상한 것보다 더 진하고 화려한 향내가 빗물 냄새와 함께 맡아졌다. 시간이 멈춘 듯 어지러웠다. 시 동안 산에 숨어 향기를 맡았다. 몰래 맛있는 디저트를 베어 문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 말이다.

'꽃향기를 맡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구나.' 비에 젖은 옷소매처럼 기분도 축축하게 느껴졌다.



"평범하고 시시한 삶 만이 확실하게 행복한 삶이지. 시시하면 당하는 것 같지만 시시한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야."


시대의 어른이라고 불릴 만큼 존경을 받는 채현국 선생이 평소에 하던 말이라고 한다. 얼마 전 뉴스에서 그분의 부고를 봤다. 부고 기사를 보기 전에는 몰랐던 분이라, 생전에 어떤 분이셨는지 궁금해져 강의 동영상과 인터뷰 기사들을 한참 찾아봤다. 써놓으신 책이 있을까 찾아봤지만 없었다. 자신을 쓰다 보면 좋게만 쓰게 될 것이니, 쓰는 건 뻔뻔한 일이라고 하셨다 한다. 책으로 남을 만한 많은 강의를 하셨지만 전혀 남기지 않았다니 놀라웠다. 스로 자신의 말을 실천한 분이었다. 그래서인지 '사람이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새삼 다르게 느껴졌다.


'지금 나는 잘하고 있는 건가?'

항상 확실하지 않은 것 같은 기분들을 떨쳐내고 싶었다. 가족 안에서 역할과 나 사이에 늘 투닥거리고 오락가락하며 지낸다. 그러다 보면 선을 긋고 싶어 질 때가 자꾸 온다. 그런데 채현국 선생은 노년의 나이에도 "확실하게 아는 것도 고정관념이다."라고 하셨다.

어쩌면 나도 모르게 고정관념에 늘 갇혀 자유롭지 못한 걸, 엄마 노릇하느라 그런 거라 착각했는지도 모른다. 이유 없이 가라앉는 기분들이 생기면 산책을 나와 걷는다. 길가의 꽃을 보면 금세 다른 세상으로 간다.

라일락 향기를 남몰래 맡고 나니, 두 달은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두 달 뒤면 장미꽃이 흐드러지게 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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