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들이 왁자지껄 하게 꽃잔치를 마치고, 잠잠해진 듯 고요한 기분이다. 꽃나무와 땅 위에 야생화들이 뒤로 물러나자 담장의 찔레꽃이 다시 벌들을 끌어모으고, 벽에 기대선 장미덩굴은 기다렸다는 듯 가장 화려한 꽃을 선보이고 있다. 볼거리가 많았고 북적이던 축제는 이미 끝났지만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봄과 여름 사이에 나도 어정쩡하게 서있는 듯했다.
금계국 @songyiflower인스타그램
중랑천 수변공원에서 금계국을 만났다. 지금은 한송이가 피어있지만 곧 진한 노란색은 황금물결처럼 반짝거릴 것이다. 코스모스가 피기 전에 피는 금계국은 얼핏 보면 진한 노란 꽃잎이 황화코스모스를 연상시킨다.
1년 전이었다. 집 뒷산에 작은 공원이 만들어졌는데 경사진 언덕을 모두 금계국이 뒤덮었다. 주변에 키 작은 아까시나무 꽃이 향기로웠고 금계국은 바람에 자유롭게 머리카락을 날리듯 이리저리 흔들렸다. 잠시 일렁이는 금계국 틈에 서 있었다. 무슨 일인지 이상한 기분이 들어 발아래를 내려다봤더니, 대파 만한 굵기에 뱀 한 마리가 있었다. 몸이 굳어버린 듯 움직일 수 없었다. 오직 움직이는 건 바람에 흔들리는 금계국과 콧속으로 들락거리는 숨소리뿐이었다.
'혹시라도 신발 위로 올라오면 어쩌지 도망을 가야 하나?' 잠시 어쩔 줄 몰랐다. 이미 머릿속은 하얗게 변해버렸다. 신발과 한 뼘도 안 되는 자리에 있던 뱀은 멈춘 듯했지만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쩌지 못한 채 뱀에 물릴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은 바짝 마른 흙 위를 미끄러지며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다행히도 뱀을 시야에서 멀어졌다. 그래도 뱀이 완전히 보이지 않을 때 까지도 꼼짝 않고 서 있었다. 잠시 뒤 한숨을 내쉬는데, 눈이 찔끔거리며 촉촉해졌다.
방금 전까지 초록 덤불 사이로 눈이 부실 듯 노란 금계국을 보고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금계국이 자유롭게 보였지만, 꽃도 핀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힘겨움도 있다는 걸 떨칠 수 없었다. 마치 옴짝 달짝 못하는 내 처지처럼 느껴졌었다.
갑자기 나타난 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살아 있다는 걸 확인시켜주었다. 내뱉는 숨은 바람소리보다 더 거칠고, 태양만큼 뜨거운 열기를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쿵쿵 뛰는 심장은 어느 때보다 건강하게 살아 있음을 말이다. 뱀이 나를 찾아와 멈춘 시간은 생생히 내 존재를 증명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