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들을 구경하느라 등나무 꽃은 놓치고 지나치기 쉬운 꽃이다. 이파리와 꽃이 함께 피니 꽃을 찾아보지 않으면 보기 쉽지 않다. 게다가 등나무는 혼자 설 수 없는 나무다. 덩굴 식물은 강인하기도 하지만 벽이나 지지대에 기대서 자란다.
오래된 학교나 공원에서 볼 수 있지만, 살고 있는 동네에는 공원 산책로에 유일하게 한그루가 있었다. 산책로에 벚꽃이 지고 장미덩굴이 새잎을 뻗어낼 때 등나무는 꽃과 잎을 피워냈다. 향기도 좋지만 나무 얼개 사이로 내려온 연보라색 꽃송이가 바람에 찰랑찰랑 빛이 났다.
지금은 사라진 등나무꽃 @songyiflower인스타그램
동네 꽃 명당은 줄줄이 외우고 있는데, 떨어져 있고 자주 가지 않는 산책로라 시간을 맞춰 가지 않으면, 바닥에 떨어진 꽃송이를 보고 '아차' 하기 십상이었다.
그런데 돌이킬 수 없는일이 벌어졌다. 꽃이 필 시기를 맞춰 찾아왔다고 좋아했는데, 등나무를 싹둑 잘라버린 것이다. 며칠 전꽃을 보러 왔을 때 오래된 벤치를 수리하나 보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벤치와 등나무가 얹어진 나무 가림막을 철거했던 것이다. 나무 가림막이 집이었던 등나무도 밑동이 잘린 채 그루터기만 남았다. 그 자체로 초록쉼터였던 등나무 그늘이 공원이 새단장을 하면서 그늘막이 없는 새 벤치로 바뀌었다.
'꽃이라도 다 보게 해 주지' 덩그러니 남은 그루터기를 보며 한숨이 나왔다.
만개한 등나무 꽃 @songyiflower 인스타그램
새로 이사 온 동네에서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았다. 한겨울에 이사 와서 알아보지 못했지만 아파트 단지마다 등나무 벤치가 있고, 집 앞 학교엔 근사한 등나무 꽃이 한창이다. 날마다 산책을 가는 공원에도 철재 울타리 위로 막 피어난 꽃과 이파리가 눈이 부실 지경이다.
등나무가 핀 벤치를 따라 걷다 보면 하루 만보는 충분히 채울 수 있다. 지칠 땐 잠시 벤치에 앉아 여유도 부릴 수 있으니 한동안 등나무 벤치를 따라 산책을 나설 것이다. 벤치에 앉아 올려다보니 연둣빛 이파리는 하늘을 향해 손을 뻗고 연보라색 꽃은 땅 아래를 내려다보며 나에게 말해주는 듯하다.
"기회는 또 있어!
조바심은 늘 따라다니고 이별로 인한 슬픔은 잊어버릴 만하면 나타난다.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 등나무 꽃만이 아니란 걸 잊고 있었다. 그래도 또 기회가 올 거라고 믿어야 한다는 걸 배운다. 기회는 순식간에 지나가니 잡으려면 매일매일 거르지 말아야 한다. 새로운 곳으로 간다면 또 새로운 것을 만나게 될 것이다. 한 번도 가지 않았던 곳으로 가보면 기다렸던 꽃이 더 많이 피어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