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상선기능저하증은 나를 미치도록
울게 했다.
병원에 갈 때마다 병원 화장실에서 한차례, 의사 앞에서 또 훌쩍, 그리고 병원을 나서서 또 한 번 더 병원에 간 날 나의 기대는 눈물로 바뀌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에게 건강하고 활기찬 엄마가 되어 주지 못해 미안하고, 나중에 가족들에게 짐만 될 것 같은 내 존재가 너무 부담스럽다. 그러다 누구를 향해야 할지 모르는 분노가 나를 삼켜 버린다. 그런 나 이 모든 사실이 나를 슬프게 한다.
내 병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
쉽게 지치고 피곤한 몸 때문에 자꾸 다른 사람이 이해하고 보살펴 주기를 자라는 내가 어린애 같고 창피하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 괜히 아이들에게 짜증 내는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럽다.
<책 어른으로 산다는 것- 김혜남>
정말 이 구절들이 아픈 나를 위로해주었다. 그녀도 아픈 몸 때문에 무척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의 삶처럼 일어설 수 있을지 자신 없었다.
책에서도 체념해야 할 때 체념하는 것, 체념할 수밖에 없을 때 체념해 버리는 것... 나는 이것이 문제였다. 인정하는 것 이상으로 받아들이고 단념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녀가 말한 마음을 비슷하게 먹기까지 수개월이 걸렸다.
늦봄이다. 곧 여름이 들이닥칠 듯 한낮은 더웠고, 때 아닌 모기가 아이들을 괴롭혔다. 마스크를 잠깐 내리면 저절로 '음 좋다' 탄성이 나는 등나무 꽃을 따라다니다가 새초롬하게 핀 붓꽃 한송이를 만났다. 꽃이 알려주는 시간은 정확하다. 이젠 여름의 시간이 오고 있다. 그 옆으로 봄 망초가 달콤한 향기로 불러 모은 벌들이 윙윙 거리니 제비꽃들이 뒤편으로 물러난다.
붓꽃(아이리스), 봄망초(망초)@songyiflower 인스타그램 아이의 천부적인 호기심을 언제나 생생하게 유지하려면 우리가 사는 세계의 기쁨, 감격, 신비를 함께 찾아가며 감동을 나눌 수 있는 어른이 적어도 한 명은 아이 곁에 있어야 한다.
- 레이철 카슨의 책 <센스 오브 원더:The Sense of Wonder 경이로움>
이 글은 레이철 카슨의 책 <센스 오브 원더: The Sense of Wonder>에 일부다.
그녀는 늘 아내가 있는 작가가 부럽다고 했다. 남성의 권위가 여전했던 시절 그녀는 오롯이 작가로 글을 쓸 시간을 많이 갖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자연의 경이로움을 쓰려했지만, 안타깝게도 환경은 망가져가고 있었다. 해양생물학자로 자연을 지키고 싶었지만, 자신도 지키며 글을 써야 했다. 남자들의 권위에 도전하는 글을 쓴 것도 아니었는데, 그들과 맞서야 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병명조차 남편이 없다는 이유로 알려주지 않았다니, 그녀가 느꼈을 답답함은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더 많은 시간을 집필에 쏟았다.
<침묵의 봄>과 <우리를 둘러싼 바다>를 읽고 나서 인지 <센스 오브 원더>는 짧은 글이지만 쉽게 책장이 넘어가지 않았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걸 떠올리게 해 주었다.
그녀가 유방암으로 안타깝게 떠나기 전 '당신의 자녀가 자연에서 놀라움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라'라는 제목으로 잡지에 실렸던 걸 사후에 단행본으로 만들었다.
어른인 우리에게도 어린이였던 시절이 있었다는 걸 그녀가 일러 주는 듯했다. 어린 시절엔 분명 있었던 것들을 잊고 있었다. 흙 길만 걷다가 아스팔트 포장된 길을 걸으며 어색했던 발바닥이 딱딱한 느낌, 부모님을 따라 시내로 나올 때면 맡아졌던 자동차 매연냄새가 여전히 기억이 난다. 도시로 이사하고 내 신발을 금방 더러워지지 않았지만, 계절마다 바뀌는 야생화 향기는 맡을 기회는 사라졌다.
아직 남은 봄 꽃을 찍기 위해 아침 산책을 나섰다. 가장 먼저 핀 매화가 핀 자리엔 매실이 커졌고, 겹벚꽃은 떨어진 꽃잎이 나무에 달린 것보다 훨씬 더 많았다. 공터마다 야생초들이 초록으로 꽉 채워져서 완전히 뒤엉켜 있다.
아직 옹알이를 하는 아이를 안은 엄마가 꽃이 예쁘다며 한껏 밝은 목소리로 웃는다. 그런데 아이는 꽃보다 그런 엄마가 더 좋은 모양이다. 엄마 얼굴을 만지작 거리며 웃는다. 그 뒤로 유치원 가방을 멘 아이가 엄마의 재촉에도 이리저리 한눈을 팔고 있었다. 민들레도 보고 새잎이 돋은 회양목도 들여다보며 유치원 갈 생각은 저 멀리 보낸 듯했다. 아이는 갑자기 나타난 비둘기를 쫒느라 엄마 소리는 못 듣는다. 결국 엄마는 아이를 번쩍 안고 유치원으로 갔다.
도시에서도 자연을 볼 수 있다면, 우리들의 풍경이 그다지 삭막하지는 않은 듯하다. 길가에 핀 봄망초꽃 한 송이를 보며 어린 시절이 눈앞에 보이는 듯 그리웠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늦봄을 즐기러 가야겠다. 멀지 않은 곳, 바로 집 뒤로 이어지는 화단을 따라 걸으며 아이 눈높이에 알맞게 핀 봄망초를 보여줄 작정이다.
레이철 카슨은 "경이로움"을 갖춘 사람은 인생에 지치지 않는다고 했다. 어쩌면 내가 꽃을 보며 그리워하는 것이 바로 그녀가 말한 '경이로움' 인지도 모르겠다. 고단한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지지치 않으려면 어떻게든 하늘과 땅 그리고 바다 어딘가에 있는 꽃 같은 존재들을 들여다봐야 한다.
도시에 살지만 자연을 찾아다니는 일을 멈출 수 없는 이유도, 갑상선이 원래 대로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과 비슷하다. 잠시 작은 한송이 야생화를 들여다보며 아슬아슬 하지만 여전히 살아있음을 느끼게 된다. 막 피어난 봄 망초가 싱싱한 향기를 풍기며 내게 당부했다.
"너무 애쓰지도 지치지도 말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