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잘 지내고 있어요
갑상선을 지키고 나를 지키는 법
과거로 돌아가면
갑상선에 염증이 생기지 않게 할 수 있었을까?
늘 알고 싶었다. 내 목이 툭 튀어나올 정도로 갑상선에 염증이 드리워진 건지, 과거로 돌아가면 미리 막을 수는 없었을까? 내 항체 지수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약을 끊을 수 없다는 말이다.
갑상선 염증을 일으키는 원인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장염증을 일으키는 식습관으로 인한 문제, 자가면역을 방해하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배제할 수 없으며, 생애 주기에 따른 갱년기 증후나 출산 후 찾아올 수 있는 몸의 변화 등 여러 가지 요소들은 찾아낼 수 있었다.
혈액 검사로 갑상선 자극호르몬(TSH)과 갑상선 호르몬(Free T4, T3) 측정한다. 그리고 갑상선 자가항체 지수를 측정하게 되는데, 나의 경우는 적정 지수를 아주 크게 넘는 항체 지수를 가지고 있다. 보통 이렇게 높은 자가 항체를 갖고 있어서 하시모토 갑상선염으로 분류된다. 안타깝게도 하시모토 갑상선염은 자가면역질환으로 완치가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하시모토 갑상선염은 남성보다 여성이 4배 정도 더 많이 발견되며, 이 원인으로 갑상선 기능저하증 환자가 여성이 더 취약하다고 알려져 있는 것이다.
갑상선 호르몬은 도파민과 아드레날린을 조절하는데, 갑상선 기능 저하증이 경우 호르몬의 부족으로 우울증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치료를 하는 긴 시간 잔잔하게 느껴지던 우울감들이 바로 그런 이유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갑상선에 냉장 보관된 글쓰기>를 시작하게 된 것도 병이 내게 준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싶어서였다. 몸이 호전되자 '병' 의미를 나만의 해석으로 남겨두고 싶다는 기분이 들었다.
하얗게 내린 서리꽃이 핀 화단에 서성거리고 있었다. 몸을 감싸는 공기가 차갑지만, 내 몸은 춥지 않은 듯 온기가 느껴졌다. 웬일인지 호주머니 속에 양손은 따뜻했다. 냉장고에 보관된 차가운 물을 마시지 않아도 몸은 늘 서늘했었다. 갑상선에 생긴 염증이 몸을 차갑게 해서 꼼짝하지 못했던 지난날을 떠올려 보려고 했지만 이미 멀어진 듯했다. 언제부터 서늘함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일까?
추운 겨울이라 못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겨울을 열 번도 넘게 보내고 또 그만큼의 봄과 여름을 보냈기 때문이었다. 어느덧 계절의 순환처럼 아픈 갑상선을 가진 내게 익숙해져 있었다.
나는 다른 사람의 평가를 무척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편이었다. 때론 그 평가가 나를 극심하게 뒤 흔들기도 했다. 어느 날 갑상선이 망가지니, 이젠 눈치를 볼 대상이 하나 더 늘어나버렸다. 일상의 모든 순간에 갑상선의 눈치를 보는 내가 느껴졌다. 혼자 있건, 남들 앞에 있건 간에 갑상선은 날 감시하는 기분이었다.
내 일상은 반드시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갑상선은 눈치를 주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냥 쉴까? 청소만 할까? 청소하고 옷 정리도 할까? 책을 삼십 분만 더 볼까? 물어봐야 했다. 수다를 위한 만남을 오전에 할까? 오후에 할까? 아니면 다음으로 미룰까? 물어봐야 했다. 체력은 매일 다르게 느껴졌고, 갑상선이 피곤하다고 하기 전에 몸을 챙겨야 했다. 예민하고 까다로워진 갑상선은 호르몬제를 먹는 것 만으로 조금씩 되살아 나기 시작했다.
몸을 다시 건강할 때로 되돌릴 수 없지만, 치료하는 동안에 내 몸과 마음은 새롭게 단련되었다.
1. 내 몸은 내가 지켜야 한다
피곤해지면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이 낮잠을 잘 땐 같이 자고, 가족들이 없는 동안 집안일을 미루고 쉰다. 집안 청소는 일주일 1-2번 정해서 하고, 식사 준비나 세탁을 우선으로 했다. 몸이 지치면 짜증부터 났고, 쉬고 나면 몸이 충전되듯 기운이 났다. 어떻게든 가족들에게 짜증 내는 버럭 엄마로 오해받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2. 타인을 위한 삶을 최소화하다
회사는 퇴직서를 내니 일사천리로 정리되고, 퇴직금을 수령하니 끝이 났다. 일로 얽힌 타인과 정리는 쉬웠다. 다만 좀 더 친한 가족이 문제였다. 당장 나를 위한 시간도 빠듯한데, 가족이 걸려오는 전화는 달갑지 않았다. 몸이 아픈 것과 집안일은 상관이 없었다. 장녀로 아버지 없는 가족을 돌보는 일은 결혼 후에도 이어졌기 때문이다. 여전히 시댁과 친정에서 일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매일 주어진 임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서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그래서 못하겠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전보다 마음은 더 가벼워졌다.
3. '아니요'를 좋아해야 한다
거절을 못하니 부탁한 일을 달고 살았다. 재주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 도우는 일은 즐거웠으니, 온종일 주변 사람 뒤치다꺼리를 하며 보람이라고 느꼈다. 아픈 뒤 '무리를 하면 안 돼서요.' 혹은 '아니오. 못해요'를 연습했다. 평소 내가 아니어도 잘 지내는 분들이었다. 그런데 내가 불편해지자 누구도 내 사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방송에서 갑상선 질환에 걸린 연예인이 나오면 내가 같은 병인지 물어보는 정도였다. 거절할 때 아픈 것이 핑계가 되었을 뿐, 슬플 일도 아니었다. 각자 사는 인생길이니 말이다.
4. 완벽하려는 마음을 버리다
상상 속에 원하는 내 모습은 뭔가 똑 소리 나는 모습이었다. 문제가 생기면 나서서 중재하고 이해시키는 일을 좋아했다. 이타적인 삶을 사는 것이 보람이었지만, 그만큼 나도 버거울 때가 있었다. 무슨 일을 하던 나는 시작과 끝이 명료해야 했다. 일을 할 때도 완벽하게 하고 싶어 벼락치기하듯 몰아서 일을 했다. 그렇지만 과로는 결국 몸의 면역체계를 뒤흔들어 놓았다. 지치지 않으려면 완벽함 보다 유연함이 중요했다. 매일 다른 과제들이 쏟아지고, 매번 잘할 수도 없었다. 모든 걸 완벽하게 하지 않아도 큰일이 아니었다.
5. 좋아하는 일을 찾아야 한다
컨디션과 기분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좋아하는 걸 찾아야 했다.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했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무엇일까?' 간단한 질문이지만 예전에는 대답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좋아하는 것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예를 들어 예전엔 그냥 걷는 것이 좋았지만, 요즘은 새벽 중랑천 걷기, 비 온 뒤 걷기, 나무 숲 걷기, 가족들과 주말 아침 동네 산책도 좋다. 좋아하는 일도 좀 더 구체적이고 정확한 이유가 생겼다. 좋아하는 것이 많아지니 그것들만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해졌다. 기분이 좋아지는 방법을 많이 알 수록 부자가 되는 기분이 들었다.
6. 호르몬제를 반드시 먹는다
호르몬제는 매일 규칙적인 시간에 복용해야 한다. 자기 전에도 먹어봤지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먹는 편이 나았다. 새롭게 시작하는 아침에 에너지를 충전하려고 비타민을 먹는 것처럼 말이다. 꼬박꼬박 정해진 시간에 먹다 보면 몸이 먼저 달라고 하는 듯 느껴졌다.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지켜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덕분에 아침 눈을 감은채 약병을 찾아 뚜껑을 열 수 있는 기술이 생겼다.
7. 과거도 미래도 버린다
병에 걸린 이유를 찾고 싶었다. 그래야 병을 인정하고,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막연한 고집이었다. 갑상선이 아프면 지금을 살 수가 없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며 무기력했다. 치료가 시작되고 회복된 몸은 이제 뭘 해도 된다며 응원해 주었다. 대신 무리하지 않고 현재를 사는 법을 터득해야 했다. 현재를 살지 않으면 미래도 없었다. 앞으로 몸이 나빠질 걱정은 하지 않기로 했다. 나이 듦에 따라 몸도 조금씩 삐걱 걸릴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아픈 것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갑상선이 '지금'을 멈춰버렸기 때문에, 나를 객관적으로 볼 기회도 생겼다. 그리고 인생에서 무엇이 소중한지 깨닫게 했다. 그건 바로 '지금 만큼 소중한 것은 없었다는 것이다.'
타인의 평가에 예민한 건 여전하지만, 예전처럼 평가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스스로 하는 자신의 평가도 되도록 가혹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 모든 것이 병이 알려준 것 들이다. 갑상선은 망가졌지만. 나를 지키는 법을 새롭게 배우게 했다. 갑상선과 잘 타협하는 법을 찾은 후로 나는 잘 지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