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려도 오지 않는 전화는 이유가 있다. 주파수가 나에게 맞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기다리는 전화가 있거나, 연인의 전화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도 아니다.^^;
그냥 수다가 그리운 날이었다. 까르르 웃던 친구들의 수다가 생각이 나지만 그런 전화는 이제 오지 않는다. 대신 걸려오는 전화는 달갑지 않고, 별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이들 학교에서 오는 전화라면 더욱더 그렇다.
작년에 스마트 폰을 새로 바꿨다. 20년 넘게 쓴 전화번호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그동안 하고 싶었던 고독의 시간을 만들 기회였다. 그건 바로 윌든 호수로 들어간 소로우처럼 그동안의 인연들을 떠나는 일이었다. 그래서 저장되었던 연락처를 휴대폰에 그대로 둔 채 떠나보냈다. 그때부터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고 나와 잘 지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불쑥 외롭고 사람들이 만나고 싶기도 했다. 수다가 그리운 기분은 오지 않은 전화를 기다리는 것 같다. 그런데 꽃이 지는 것처럼 시들해졌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다 보면 어느새 혼자 있는 것이 편해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수다가 그리운 날은 산책을 나섰고, 하소연을 하고 싶은 날은 꽃밭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혼자 있고 싶은 마음과 외로운 마음은 꽃이 피고 지는 것처럼 계속 찾아온다.
튤립꽃밭을 발견했을 땐 아무것도 없는 맨땅에 '튤립이 자라고 있어요.'라는 팻말이었다. 꼬박 한 달이 지나자 급한 성미를 가진 몇 송이가 보이더니 금방 화려한 왕관 모양의 꽃잎이 사람들을 붙잡았다. 탐스럽게 핀 꽃을 여러 번 만날 수 있을 듯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튤립이 완전히 알록달록해졌을 땐 다른 꽃밭에서 시간을 보냈다. 사람들이 붐비는 시간엔 아무래도 꽃 사진을 찍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은 날 튤립꽃밭이 떠올랐다. 산책로에 피어있는 튤립 꽃을 하나씩 찍으면서 푸념을 하고 싶었다. 튤립은 어느새 지고 있었다. 산책로를 오가는 사람들도 꽃을 항상 서 있는 가로수를 보듯 스쳐 지나갔다.
정오의 태양은 튤립을 수직으로 내리쬐며 어둠을 모조리 사라지게 했다. 구름 없이 파란 하늘 아래에서 눈이 부셨다. 꽃밭 안에서 잠깐 어지럼증이 났다. 꽃구경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얼마나 혼자 있었을까?
정신이 들어 주변을 살폈는데 꽃밭이 아닌 곳에 다른 꽃들이 보였다. 노란 겹 튤립 꽃 네 송이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이미 시든 꽃잎은 할 일을 마친 상태지만 잘린 꽃은 다른 사연이 있는 듯했다. 누구의 손에 꺾여서 한데 모인 듯 했다. 튤립도 나도 떠나야 할 때가 된 것은 분명했다. 꽃밭에서 수다를 충분히 떨었으니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했다. 나와 잘 지내다 보니 친구는 없지만, 나는 잘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