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잘 지내고 싶다

감정에 대한 감정

by 무쌍

어디선가 떨어진 장갑 한쪽처럼 찾을 길이 없었다. 장갑을 어가에 두고 나왔다가 뒤늦게 깨닫고 찾으러 가는 길이었다. 하지만 이젠 어디에 두고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장갑 한쪽 만 가방에 들어 있을 뿐이 었다. 바쁘게 지낼 때는 모르다가 뭔가 틈이 생기면 훅 들어오는 감정이 있다.

길을 잃어버린 듯 한 '공허함'이다.

무엇이든 써야만 할 것 같았다 누구에게든 쏟아 내고 싶었다. 엄마는 오늘도 할 말이 많으신지 내가 끼어들 틈을 주시 않는다. 전화를 들고 저장된 전화번호 목록을 하나씩 차례로 넘기며 누군가를 찾다가 그만 멈췄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산책을 나섰다. 한참을 걷고 나니 머리는 바람이 들어 텅 비었고, 가슴은 아직 멀미 기운이 있는 듯 울렁거린다. 다시 주변을 살피며 둘러본다. 그리고 사진을 찍는다. 작은 꽃도 큰 나무도 파란 하늘도 내 아이들도 그렇게 휴대폰엔 감정들이 쌓였다. 글을 쓰면 몸에서 도려낸 듯 감정이 옮겨지는 것처럼, 사진을 찍을 땐 감정이 사진 속에 기억된다.


꽃을 많이도 찍었다. 아이가 '엄마는 평생 꽃 찍을 거잖아!'라고 말하는데 달리 부정할 수 없었다.


나이 든 억울한 심정을 버리고 싶어 덜 핀 장미만 골라 찍었다. 그러다가 시들어가는 장미도 찍어 보니 나쁘지 않았다. 장미가 시드는 것이 내가 나이 드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장미기를 맡으며 잊어버렸다. 똑같은 장미덩굴을 십 년 넘게 찍다 보니, 늘 서른 살 어디쯤에 살고 있다고 믿는다.

새 학기 등굣길에 옹기종기 제비꽃을 보며 아이들의 미래 상상했다. 언젠가 자신만의 세상을 나설 제비꽃처럼 말이다. 자신이 태어난 곳을 떠나 꽃이 되면, 낳아준 엄마와는 이별이겠지만 꽃을 피운 것만으로 감격스러울 것이다.

벚꽃이 꽃눈이 되어 날릴 때 매번 아버지의 사랑이 그리웠다. 해마다 집 앞 벚꽃 가로수 길에 핀 벚꽃 구경을 오는 사람은 많았지만, 우리는 한 번 가지 못했다. 귤밭엔 할 일이 너무도 많았기 때문이다. 료주기와 가지치기는 시기를 놓치면 농사를 망칠 수 있으니 어떤 일도 우선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 귤밭은 해마다 주렁주렁 귤이 잘도 달렸다.

중랑천에 벌개미취를 보면서 고단하고 끝이 없는 육아와 엄마라는 삶이 서글퍼졌다. 새벽 수유를 마치고 잠든 아이를 남편 옆에 눕히고 날마다 보라색 벌개미취 꽃을 보러 갔다. 새벽이슬이라도 달려 있으면 혹시 아이가 잠에서 깨서 엄마를 찾고 있나 가슴이 철렁거리기도 했다.

친정집 옆에 핀 해바라기 꽃 사진을 찍을 땐 홀로 지내는 남편 얼굴이 떠올랐다. 뜨거운 공기 속 고개를 세우고 태양을 바라보는 모습은 남편이 일상처럼 느껴졌다. 씨가 여물어 해바라기가 고개를 숙이자, 혹시나 하는 걱정에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무슨 일이 있는지 묻기도 했었다.


꽃을 보다가 예전 어느 날이 소환된다. 꽃이 만든 그늘처럼 감정도 함께 살아 나온다. 꽃은 나를 다독이며 주변 사람들과 편안하게 반응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꽃송이로 하나하나 내 앞에서 피어났다.

감정에 대한 감정을 꽃이 바꿔주었다. 잠시 예민하게 다가온 말들을 지우고 로 쓴다. 공허함을 느낀다고 길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구에게도 상처 받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이꽃 저꽃들을 오가며 감정들을 쓰느라 아직 와 맞는 꽃을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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