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마스크가 문제였나 보다. 급식을 마친 아이를 데리러 나가는 길이었다. 임신 중 만삭일 때 느꼈던 것처럼 숨이 가쁘며 가슴이 답답했다. 내리쬐는 정오의 태양은 나를 그늘로 숨게 했다. 그래도 숨쉬기가 불편해서 여벌로 갖고 다니던 덴탈 마스크로 바꿔 썼다. 마스크만 바꿨는데 신선한 공기가 콧속으로 들어온 기분이었다. 숨쉬기가 한결 편해진 걸 느껴진 순간에 뭔가 마스크 안으로 들어왔다.
'벌써? 장미향기가 나는 건가?'
고개를 들어 보니 학교에 높은 당장엔 한꺼번에 피어난 듯, 살아있는 생화의 싱싱함을 가진 붉은 장미가 반기고 있었다.
오월의 붉은 장미는 말이 필요없다.
다행이었다. 얇은 덴탈 마스크 덕분에 장미꽃 덩굴이 핀 담장 옆에서 들이마시는 숨으로 이따금씩 향기가 맡아졌다. 지난주까지도 담장엔 뭐가 있었는지 몰랐는데 붉은 장미가 장식되니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장미 향기를 맡는데 그리워지는 것도 있었다. 작년까지 오월이면 장미축제를 하던 동네에서 살았다. 걸어서 십 분이면 5km 넘는 길이로 만들어진 아치 터널과 담장을 따라 장미가 잘 손질된 산책로가 있다. 어느 해부턴 축제가 커져서 먹거리도 팔며, 공연도 했지만 펜데믹은 그마저도 잠잠하게 바꿔놓았다.
꽃을 좋아하는 난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그곳을 좋아했다. 오월이면 수없이 들락거리며 장미꽃에 발목 잡혀 지냈다. 산책로 어디서든 진동하는 진한 장미향도 여전히 잊을 수가 없다. 십 년 넘게 살아온 시간만큼 장미의 시간을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한낮 태양이 뜨거워지니 더운 열기에 섞인 장미향이 더욱 아른거렸다. 장미가 시들기 전에 시간을 내서 다녀오고 싶었다.
담장을 장식한 활짝핀 장미
하교시간에 맞춰 아이들이 쏟아져 나온다. 꽃만 보면 주책스러워지는 난 아이에게 활짝 핀 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아이가 먼저 선수 친다.
"엄마 학교에 노란색 장미가 아주 활짝 피었어요."
아이가 손으로 가리킨 학교 화단엔 멀리서도 알아볼 만큼 진한 색이 였다. 아이와 집으로 돌아오며 장미꽃을 따라 걷다 보니 온 동네는 이미 장미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온 동네가 장미축제 중이다.
오월이 되었지만 장미꽃이 아닌 팬데믹에 발이 묶여 버렸다. 아직도 아이들은 자유롭지 못한 등교를 하며 원격 수업도 한다. 담장 가득 장미가 핀 모습을 보니 예전처럼 자유로웠던 시간이 돌아온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