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먼저 피는 꽃

개화를 시작한 코스모스 꽃

by 무쌍

봄이 다시 온 줄 알았다. 단에 팬지꽃은 새로 핀 꽃송이 모종을 금방 옮겨 심을 때처럼 싱그러웠다. 제초 기계가 자른 풀들은 어느새 같은 자리에 다시 솟아났다. 자른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난 듯 자르기 전과 같은 모양이다. 토끼풀도 더 진해진 초록 잎 사이로 막대사탕을 꽂아 놓은 듯 꽃들 주변에 벌써 곤충들이 찾아왔다. 봄까치꽃은 더 길게 목을 빼고 똑같은 파란색 꽃을 피웠다. 노랑 괭이밥 꽃이 빨간 뱀딸기 열매와 나란히 피었나 싶었는데 새로 핀 뱀딸기 꽃이었다. 분명 봄이 새로 피었다. 아니면 마음이 봄을 새로 시작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계절보다 이르게 피는 꽃을 찾는 건 시간을 번 기분이 든다. 찬바람이 불던 지난겨울과 봄 사이 봄까치꽃을 찾느라 바빴던 시간이 떠올랐다. 어색하지만 설레며 다른 인생을 시작했다. 익숙한 것을 포기한 허전함을 느끼기도 전에 봄까치꽃이 피기 시작하자. 늦지 않게 시작했고, 모든 것이 순조롭게 느껴졌다. 력을 보지 않아도 순서대로 피는 꽃을 거의 다 봤다. 꽃이 알려주는 대로 시간을 흘러갔다.


중랑천에 핀 코스모스꽃@songyiflower인스타그램

다른 꽃들 틈에 코스모스가 보인다. 이미 야생초 틈에 코스모스는 천천히 줄기를 세우고 있었다. 그런데 유독 이파리가 적고 키가 작은 코스모스들이 꽃을 피웠다. 다른 씨앗들이 몸집을 키우는 동안 꽃을 피우는 일에 전념한 씨앗은 벌써 아름답다.

산책 나온 사람들 틈에서 "어머 코스모스 봐! 다른 꽃들 피었다고 자기도 핀다고 시샘하나 봐. 벌써 피었네!" 그 여자는 얄미운 목소리를 내며 앞서 걸어 나갔다. 몇 걸음 가다가 뒤돌아와서 휴대폰을 꺼내더니 한송이 코스모스를 찍고 간다. '사진을 찍고 갈 거면 예쁘다고 해주지.' 혼자 중얼거렸다.

한송이 코스모스들 @songyiflower

뭔가 새로운 걸 시도하는 사람들은 무모하고 눈치 없다고 한다. 코스모스도 한송이가 아니라 한창 필 시기에 같은 꽃들 사이에 피었다면 아무 말도 들을 필요가 없었을지 모른다. 거침없는 사람들은 어디서나 주목을 받는다. 이르게 핀 꽃도 눈에 띄어 나쁜 손에 사라지기 쉽다. 간이 부은 사람처럼 저지른다고 해서 준비 없이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작은 싹 하나를 가지고 도전하는 용기다. 난 이르게 핀 꽃을 볼 때마다 그 에너지를 받는다. 그리고 마음에 준비를 한다. 곧 다가올 시간을 차분히 쓸 시간을 번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이른 꽃을 찾은 날은 승자의 기운을 얻는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일기>에도 꽃에 대한 관찰기록이 많이 있다.

"온 힘을 다해 관찰해야 꽃들이 잇따라 피는 모습을 따라갈 수 있다. 가장 이른 꽃을 찾으려면 어디를 봐야 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몇 년 동안 믿음을 가지고 연구해야 한다."


그가 말년에 집중한 건 식물의 개화시기를 찾아 위치를 기록하는 것이었다. 수년간 꽃들의 개화시기를 알기 위해서 하루에도 몇 키로를 찾아 나서기도 했다고 한다. 꽃을 관찰하다보면 이른 꽃을 발견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꽃 친구들이 알려주는 첫 꽃은 시작을 알려주는 싸인이다. 이제 막 코스모스가 한송이 피었으니 봄은 점점 더 멀리 물러날 것이다. 나 역시 코스모스에게 얻은 건 사진 한 장 만은 아니었다. 소로가 소중히 남긴 관찰기록만큼이나 나에겐 의미 있는 새로운 노트를 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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