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창하듯 한데 모여 향기 바람을 화단 밖으로 보내고 있었다. 내심 언제면 만발해질까 기다렸는데 드디어 때가 왔다. 날 부르는 소리를 듣자마자 그 앞으로 달려갔다.
지난번 찾아갔을 땐 봉오리만 보였는데 꽃은 한꺼번에 만발해졌다. 꽃이 내민 얼굴에 뿜어내는 향기가 덩달아 주변 공기를 청소하듯 산뜻했다. 방금 청소를 끝낸 말끔한 거실에 앉아 갓 내린 커피 한잔을 마시는 기분이 들었다. 한꺼번에 쏟아지듯 풍기는 향내를 맡아보려고, 마스크를 내려 꽃에게 내 얼굴을 소개했다. 꽃이 숨을 내뱉자 바람이 살짝 밀어주며 꽃향기가 얼굴에 닿았다. 향기가 머릿속까지 훅 들어오더니 커피를 마신 듯 정신이 또렸해졌다.
그런데 안보이던 경고장이 화단에 달려 있었다.
"꽃은 눈으로만 보세요."
"꽃을 뽑거나 꺾어가지 마세요."
백합이 핀 정원은 아파트 관리사무소 앞마당이다. 부지런한 손 덕분에 정원은 날마다 꽃을 피운다. 그런데 백합이 피자 곳곳에 없던 팻말이 달렸다.
화단에 핀 백합꽃
정원에 나가 한참 동안 일하다 보면 녹초가 될 수 있지만 내면은 기이하게 새로워진다. 식물이 아니라 마치 나 자신을 돌보듯 정화된 느낌과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다. 이것이 원예 카타르시스다. - 정원사 수 스튜어트 스미스의 <정원의 쓸모> 중에서
매일 정원을 돌보는 사람은 안다. 나무가 목이 마른 지 새로 돋은 가지가 얼마나 더 길어졌는지 말이다. 꽃이 몇 송이가 피었고 몇 송이나 시들었는지 기억할 수 있다.
식물을 기르다 보면 자신처럼 식물의 속사정을 살피게 된다. 마치 엄마가 아이들을 키우듯, 원하는 꿈을 키워가듯 식물에게 마음을 쓰게 된다. 나도 매일 아침에 눈을 뜨면 봉선화꽃이 핀 화분을 살피며 어제보다 몇 송이가 더 피었는지 세어본다. 매일 거울을 보며 새로 난 흰머리카락을 찾아내듯 말이다.
그러니 꽃이 뽑히거나 가지가 잘린 건 한눈에 알아차렸을 것이다. 꽃도둑이 그걸 모르고 갖고 가진 않았겠지만 말이다.
꽃도둑을 감시하듯 고양이처럼 어슬렁거리며 백합을 보러 가고 있었다. 꽃 앞엔 새로운 손님이 와 있었다. 머리 하얀 할아버지가 이리저리 꽃 주변을 돌며 사진을 찍고 계셨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기다렸다. 할아버지는 사진을 찍고도 금방 자리를 떠나지 못하셨다. 아니 꽃이 떠나지 말라며 붙들고 있는 듯했다. 나 역시 활짝 핀 꽃을 뿌리치는 건 쉽지 않다.
잠시 뒤 할아버지가 떠나자 꽃밭으로 갔다. 그런데 한쪽에 백합이 더 빈 듯 느껴졌다. 또 도둑을 놓친 기분이다. 도난 경보기를 달 수 있으면 좋겠다. 꽃에 손을 대면 벨이 울리며 '꽃을 뽑지 마세요. 꽃을 꺾지 마세요'라고 알려줄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