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최초의 떡볶이는 열두 살에 사촌을 따라가 먹었던 분식점에서였다. 손바닥 길이 만한 가래떡과 삶은 계란에 뭍은 소스엔 고춧가루가 잔뜩 묻었고 고추장 냄새가 났다. 김치도 매워서 못 먹는 난 얼핏 김치의 매운맛과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맛있게 먹는 언니를 보며, 포크로 떡 한가운데를 꾹 찔렀는데양쪽으로 늘어진 모양이 우산 갔았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가는데 빨리 입에 넣어보고 싶었다. 입에 넣자마자 곧바로 기침이 나왔다.
결국 떡 하나를 다 먹지도 못하고 포크를 내려놨다. 눈물이 나고 얼굴이 달아오르고 위가 쓰린 듯 아팠다. 소스 맛은 바닷물처럼 짜고 혀가 떨어질 정도로 아프게 했다. 물을 마시니 입이 더 매웠다. 헉헉 숨을 내쉬며 입안에 남은 떡을 씹었는데 삼킬 때쯤에 설탕 맛이 났다.
그 맛을 기억해보면 소금 > 고춧가루 > 쌀떡 > 백설탕 맛 순서대로 차례차례 먹는 듯 느껴졌다.엄마의 찬장 속에 있던 각종 조미료들을 섞은 후에 매운 고추장을 잔뜩 섞은 맛이랄까? 고추장말고 다른 맛들이 섞여 있었다. 그리고 처음 먹은 떡볶이는 먹는 걸로 취급하기엔 속이 거북했다.
중학교 3학년 방학 동안 고입 준비를 한다고 학교에 나갔는데 매점이 문들 닫아 점심을 먹을 곳이 없었다. 학교 앞 문구점과 함께 하는 떡볶이 집이 다였다. 그 집에 파는 건 주황색 국물 밀떡볶이였다. 어슷썰기 된 떡은 모양은 떡국떡인데 먹으면 수제비 같은 맛이 났다. 그땐 밀가루로 만든 떡인걸 몰랐다. 수제비 > 설탕 > 어묵 > 간장 맛 이렇게 순서대로 맛이 나는 떡볶이였다. 맵지 않고 카레 국물처럼 끈적하고 달콤했다.
설날 전에 떡국을 준비하느라 엄마는 가래떡을 방앗간에서 뽑아 오셨다. 가래떡이 꾸덕꾸덕 굳으면 엄마와 나는 떡국떡을 썰었다. 그때 가래떡 몇 가닥을 덜어 놓았다가 떡볶이를 만들었다.
고등학생이던 난 음식을 만들어 보고 싶어 무슨 실험을 하듯 TV 요리를 따라 했다. 무슨 맛으로 그걸 먹느냐고 엄마는 못마땅해했지만 동생들은 참 좋아했다. 간장과 참기름을 넣어 간장 떡볶이도 하고, 마늘을 넣어 볶음 떡볶이도 만들어 봤다. 고추장 떡볶이에 고춧가루와 후추를 같이 넣어보니 매운맛이 색달라졌다. 무엇보다 설탕과 고추장의 비율이 중요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멸치다시다를 넣었더니 라면 맛처럼 확실한 맛이 되었다. 아마도 집에 있는 온갖 조미료를 조금씩 다 넣어본 것 같다. 짠맛, 단맛, 매운맛이 다 느껴져야 떡볶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떡볶이는 간식이라기 보단 끼니를 해결하는 음식이다. 손쉽게 소스를 사다가 만들기도 하고, 밀 키트로 포장된 떡볶이를 만들어 먹는다. 그런데 제일 좋아하는 맛은 멸치와 다시마로 육수 낸 국물에 통통한 가래떡을 크게 잘라 넣고, 삶은 달걀을 넣은 것이다. 내 입맛에는 오래전 처음 먹었던 떡볶이의 기억이 남아 있다. 떡볶이를 만들 때마다 그 맛을 재현하려고 하지만, 아쉽게도 매번 만들 때마다 똑같은 맛이 나지 않는다.
온 가족이 떡볶이를 먹는다. 매운걸 못먹는 아이들이지만 떡볶이를 좋아하는 부모를 만났으니 어쩔 수 없나 보다. 떡볶이를 만들 때 아이들은 다른 메뉴를 함께 준비했지만, 어느 순간 같이 먹게 되었다. 막내가 떡볶이 한가닥에 물 한 컵을 마시는데 혀를 내밀며 매운맛을 어쩌지 못하고 '헤헤'거 린다.
"도대체 누가 이런 떡볶이를 만든 거야!"
"왜 엄마가 만들었는데 왜?"
"그게 아니고, 이 떡볶이를 누가 맨 처음 만들었냐고요!"
매운데 계속 먹게 된다며 떡 하나를 또 집어 든다.
내가 처음 맛본 나이보다 한참 어린나이에 먹는 모습을 보니 은근히 미안해졌다. '엄마가 널 가졌을 때 떡볶이를 너무 먹었나?'혼자 중얼거리다 또 흐뭇해졌다.
얼마 전에 한 연예인은 떡볶이를 끊었더니 살이 빠졌다며 타이어트 성공담을 인터뷰했다.탄수화물이 잔뜩 든 떡볶이는 분명 살이 찌는 음식은 맞다. 나도 군살이 신경 쓰이지만 이렇게 맛있는 걸 어떻게 끊는지 모르겠다. 중독의 길은 자기 합리화로 시작되나 보다. 나는 남편과 아이들이 떡볶이를 먹고 싶다고 할 때마다 거절하지 않는다. 떡볶이는 무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