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 하는 것이 또 지칠 때가 되었나 보다. 주말을 앞두면 더욱더 그렇다. 마트 진열대에서 카레가루를 보니 카레가 먹고 싶었다. 치매예방에 좋은 음식이라며 엄마는 자주 먹어야 한다고 하셨다. 그런데 난 손이 많이 가는 김밥보다 카레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 차라리 잡채를 만드는 쪽이 나을 듯싶다.
불 앞에서 오랜 시간 조리해야 카레는 나만의 의식처럼 너무 지쳐서 쉬고 싶을 때 하게 된다.카레는 엄마 노릇이 지칠 때 먹는 음식이 되었다.
가장 큰 양수냄비에 카레를 끊였다. 평소에 큰 냄비는 쓸 일이 거의 없지만 카레를 위해서 꼭 필요하다. 카레가루 2 봉지로 한 냄비 해놓으면 집밥 하는 수고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다. 양파가 잘 볶아진 날은 카레가 더 달고 고소해졌고, 포실포실한 감자를 넣은 카레는 먹으면서도 감자 맛이 살아있었다. 카레는 호박이나 브로콜리 같은 채소를 눈치 못 채게 먹게 되는 신기한 음식이기도 했다.
카레는 지칠때 먹는 음식이다
자취할 땐 매운맛을 좋아하는 동생과 싫어하는 동생을 위해 '순한 맛'과 '매운맛'을 섞어서 만들었다. 약간매운맛을 써보기도 했지만 동생들은 섞는걸 맵지만 더 맛있다고 해줬다. 매콤한 카레는 먹고 나면 삼계탕 먹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 들게 했다. 땀을 쭉 흘리고 나면 개운해지는데 그게 다 향신료가 들어간 카레의 효능이었나 보다.
사실 카레를 먹으면 외상 후 스트레스를 겪는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고 한다. 특히 카레의 주성분인 커큐민이 우울증 치료제와 비슷한 효과를 주며 '두려운 기억'을 잊게 해 준다고 한다. 카레에 든 커큐민이 기분을 좋게 하는 세로토닌까지 증가시켜서 행복해지는 음식이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하루 세 끼니를 카레로 먹어도 괜찮았던 건 카레의 효능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아직 어린아이들은 엄마의 카레를 좋아하지 않는다. 매운맛을 알기엔 아이들은 너무도 순수할지도 모르겠다. 순한 맛 카레가루로 만들어도 밥에 살짝 묻혀 먹기만 했다. 이번엔 양파도 진하게 볶아 내고, 야채와 고기를 버터로 볶았더니 한결 부드럽고 달콤했다. 다행히 아이들도 맛있게 먹어줬다. 하지만 예전처럼 한 냄비 가득 만들지 않는다. 가족들이 한두 끼니 먹고 나면 카레는 나만의 음식이 된다.
카레 성분이 나쁜 기억을 기억하려는 걸 지워준다니 더욱 간절했다. 게다가 머릿속을 지우는 지우개를 없애 주니, 늘 뭔가를 까먹는 난 고맙기만 하다.
주말을 보내고 3일 된 카레를 먹었다. 카레 속에 재료들은 이제 모두 흐물흐물 녹아 카레가루만 남은 것처럼 보인다. 카레를 며칠씩 먹어도 맛은 좋기만 했다.
3일 동안 먹는 카레가 집밥 하는 지겨움을 잊게 해 준 듯하다. 엄마일이 버겁다고 느낄 때마다 카레를 먹어야겠다. 곧 다시 만들어야 할지도 모르지만, 카레는 자주 먹어도 좋은 음식이라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