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바리스타 피터가 있다

별다방처럼 주문한 커피를 마신다

by 무쌍

한동안 커피를 끊었다. 한 달이 지났을까?

운동을 마치고 들른 가게에서 가족들은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집는데 망설여졌다. 아이스크림을 좋아하지않아 대신 커피를 골랐다. 커피 한 모금에 머릿속까지 시원했다. 좋아하는 것도 가끔 모른 척 잊고 있다가 다시 만나면 더 반가운 듯했다. 그런데 커피를 왜 끊은 건지 금방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느 날 속이 더부룩하고 소화가 안된다며 병원에 간 남편은 위 내시경을 받았다. 그리고 3개월 동안 약물 치료를 해야 했다. 페인이 든 커피는 금지 음식이었다. 가장 먼저 바리스타 피터가 해 주던 아보카도를 끊다. 여름 더위를 잊게 해 주던 달콤한 커피였다. 먼저 핸드드립으로 찬 커피를 내린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은 잔에 커피를 부어주면 우리 부부의 최애 커피가 완성되었다. 평소에 먹지 않는 아이스크림이지만 생크림처럼 입에서 녹았다. 그리고 남은 커피는 녹아서 저절로 달콤한 카페라테가 되었다. 유를 넣은 커피보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이었다. 식후에 마시던 진한 아메리카와 더치커피도 더는 마실 수 없었다. 대신 커피가 생각나면 인스턴트커피를 한잔씩 타서 마셨다.


혼자 마시는 커피가 익숙해질 때가 되니 남편도 다시 건강해졌다. 그런데 커피는 여전히 나 혼자만 마신다.

회사 다닐 땐 오후 나른한 시간에 마시던 커피 한잔이 주는 행복감이 있었다. 육아를 하면서도 하루에 한두 잔은 너무도 달콤했다. 편이 늘 만들어 주는 커피도 없고, 혼자 마시는 커피가 점점 맛이 없어졌다.


택배 상자 하나가 집에 왔다. 친정엄마는 김치냉장고에 묵은 김치가 넘치고, 제사 때 만든 시루떡이 먹을 사람이 없다고 하셨다. 반갑지는 않았지만 택배는 집으로 왔다. 상자 안엔 웬일로 맥*블랙커피 한통이 들어 있었다. 반갑지 않은 것들 중에 커피가 있으니 갑자기 택배 상자가 좋아졌다.

유통기한이 6개월 지난 커피라는 걸 알게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먹고 있던 커피가 있어서 한 달쯤 뒤에 택배로 온 커피를 뜯었다. 보기엔 아무렇지 않았는데 뜨거운 물에 타서 마시려는데 냄새가 이상했다. 한 모금 맛을 보니 기만 했다. 눈을 크게 뜨고 커피통을 살폈다. 아뿔싸, 또 창고 어딘가 있던 커피가 왔다. 마의 저장 강박증과 아무거나 먹는 장녀는 항상 이런 일을 만든다. 마음이 불편해졌다. 이젠 정말 택배를 끊고 싶었다. 그리고 한동안 커피 생각은 나지 않았다.

홈카페를 위한 원두와 주문한 아이스라떼

동을 마치고 가게에 들러 가족들은 아이스크림을 난 커피를 샀다. 그런데 남편이 원두 한 봉지를 함께 계산했다. 이럴 땐 말없이 위로를 받은 기분이다. 그날부터 다시 커피를 마신다. 바리스타 피터가 다시 돌아왔다. 물론 손님은 나 혼자다.

원두는 케냐 AA 다크로스팅이다. 하루에 한 번 주문을 한다. 봉투를 열기도 전에 원두향을 맡으려고 코가 예민해진다. 수동 그라인더에서 원두가 또르르 떨어지는 소리가 듣기 좋다. 그라인더 손잡이를 돌리니 연필 깎는 소리처럼 가볍게 원두가 조각이 갈린다. 여과지에 담긴 커피가루에 뜨거운 물이 들어가는 순간부터 한 모금 마시는 기분이 든다.

핸드드립은 에스프레소 기계에서 나오는 커피와는 다른 맛이다. 바리스타가 만드는 걸 보며 커피맛을 상상하기 시작한다.


어제는 날이 더워서 아이스라테를 마셨으니, 소나기 내린 오늘은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부탁했다. 바리스타 피터는 커피잔을 모은다. 그래서 집에는 그릇보다 컵이 더 많다. 커피 종류에 맞는 잔을 꺼낸다. 벌써 내 앞엔 커피 한잔이 나왔다. 바리스타가 있으니 별다방만큼 주문한 대로 커피가 만들어진다.

내가 주문한대로 나오눈 완벽한 커피 한잔

언젠가 아이가 놀러 온 이모에게 말했다.

" 이모, 아빠가 만든 커피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요."

" 네가 어떻게 알아? 커피도 못 마시는데?"

" 다 알아요. 커피 마실 때 엄마 얼굴 보면 알 수 있어요."

좋아하는 마음은 감출 수 없는 듯하다.

커피를 마실 때마다 아이는 내게 와 묻는다.

"이그 엄마는 아빠가 만들어준 커피가 그렇게 맛있어?"

남편은 커피를 완전히 끊었지만, 바리스타 피터가 다시 카페를 열었다. 나만의 커피를 마실 수 있으, 문만 열리면 얼른 주문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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