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있는 동안 나는

새로운 기회

by 무쌍

새로운 꽃이 피면 새로운 글을 쓰는 기분이 든다.

잘 쓸 수 있을 것 같아 아껴놓은 듯 이야기가 술술 나올 것만 같다. 하지만 쓰다 보면 예민한 펜은 날카롭게 상처를 내는 듯 나를 괴롭히기도 했다. 잠깐 아슬아슬 송곳 같은 글들을 피하고 나니 또 긴 문장이 쓰여있었다. 배가 부른 듯했지만 포만감이 들지 않았다. 배를 채우려고 아무거나 먹은 음식처럼 글도 아무렇게나 쓰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들었다.

그때마다 머릿속엔 아무렇게 피었던 야생화들이 보였다. 그 풍경이 상상이 되지 않는 날엔 집 밖으로 나갔다.

나리꽃@songyiflower인스타그램

새벽에 내린 큰비는 거리를 흠뻑 젖게 만들었다. 촉촉한 공기는 아침산책을 재촉했다. 화단 한쪽에 쓰러진 한 나리꽃 묶음이 였다. 빗물이 꽃송이를 무겁게 했지만 나리꽃는 아무렇지 않은 듯 스스로 빛을 내고 있었다. 나도 그 틈에 얼굴을 묻고 숨고만 싶었다.

꽃이 있는 동안 나는 나리꽃의 자신감을 빌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금방 걱정이 되었다. 나를 두고 가버리면 기억할 것이 필요했다. 나리꽃 사진을 여러 번 찍었다. 그래야 나중에 내 곁 없다는 걸 인정할 수 있을 것 만 같았다.


너는 떠났지만
네가 있는 동안 나는 너만 보러왔어!


삶을 되돌릴 수 없듯 꽃이 떠나는 것도 같았다. 길가에 방긋 웃어주던 나리꽃은 한 주 만에 줄기만 남았다. 알고 있었지만 끝을 보는 건 섭섭했다.

그 앞에서 잠깐 머뭇거렸지만 떠나야 했다. 그리고 또다시 걸었다. 꽃처럼 어디서든 피어나는 이야기를 찾고 있었다. 기회는 다른 곳에서 기다리고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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