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와서 다행이었다

팬지꽃

by 무쌍

숲 속엔 작은 도서관이 있다. 문 앞을 지키듯 줄지어 놓은 화분이 양쪽으로 있다. 오갈 때마다 초봄에 심은 팬지꽃은 쉬지도 않고 새꽃을 피운다. 기 손바닥만 꽃송이 새로 필 때마다 얼굴이 작아지더니 이젠 엄지손톱만 해졌다.

여름 숲은 나무가 푸르게 초록이파리로 뒤덮였고 화분 말라버린 잎과 씨앗을 여문 꼬투리만 보인다. 그런데 나무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햇볕을 따라 길게 내민 꽃 한 송이가 보였다.


오늘도 친구를 만났다. 자신의 환경을 탓하지 않고 스스로 힘을 내는 작은 한송이를 말이다. 먼저 핀 꽃들이 다 쓰고 가버려 양분을 충분하게 얻지 못했지만, 나무 사이로 들이치는 빗물을 의지하고 매일 밝아오는 태양을 기다렸다. 마침내 세상에 내놓은 작은 책에는 숨죽인 채 읽어야 할 죽음의 순간이 쓰여 있다. 몇 번이고 포기하고 싶고, 숨이 넘어갈 듯 쓰려졌던 슬픔을 말이다. 아무도 봐주지 않아도 자기 자신이 될 거라고 의심하지 않는 순간들이 빼곡하게 단단한 언어로 쓰여 있다.


아무렇지 않게 책을 골라 읽는 나는 참 편하기도 하다. 그냥 읽기만 하면 되니까 말이다. 책을 쓰는 사람의 고통을 나는 얼마나 알 수 있을까? 꽃송이가 피어나듯 세상엔 수많은 책들이 쓰인다. 세상이 핀 꽃을 다 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책이란 책은 모조리 읽고 싶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렇지만 나를 찾아온 이 그럴 필요 없다며 타이른다. 세상의 이치는 그렇게 찾는 것이 아니라고 그만두라 한다. 팬지꽃 한 송이는 조각 같은 태양으로도 충분하다며 만족하는 법을 배우라고 한다.


한송이 꽃, 그 작은 책엔 얼마나 깊은 세상이 들어 있을까? 못 보고 지나칠 뻔했지만 나에게 와줘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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