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정확하게 꽃을 피우고 있다. 여름 꽃은 일찌감치 피기 시작했고 이젠 중반전이다. 벌써 핀 꼬리조팝나무 꽃은 분홍빛이 사라지고 갈색으로 변해버렸다. 여름에 꽃이 피는 꼬리조팝나무는 가지 끝에 작은 구슬이 포도알처럼 달린 게 터지면서 털이 보송보송해진다. 늘어진 가지는 이리저리 흔들며 바람에 출렁거리고 있었다. 여름 화려한 꽃들과는 다르게 은은한 연분홍 꽃은 만개하면 수국처럼 꽃이 커서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비 맞은 꽃과 한낮의 꽃(꼬리조팝나무꽃)@songyiflower인스타그램
나비들이 춤을 추니 꽃 주변은 모처럼 생기를 찾았다.
나도 사진을 찍느라 꽃을 옆으로 위로 아래로 살폈다. 아무리 봐도 꽃은 예쁜데 내가 문제인 듯했다. 너무 예쁜 풍경일 땐 사진도 소용없을 때가 있는데 그게 바로 꼬리조팝나무 꽃인 듯했다. 마음에 드는 사진이 찍히지 않았다.
흰나비들도 날갯짓을 하며 나처럼 꽃 주변을 위로 아래도 살피는 듯했다. 꽃에 앉으려던 한 나비가 뭔가에 걸린 듯 날갯짓을 급하게 했다. 그런데 눈앞에 출렁거리는 건 나뭇가지가 아니라 반짝거리는 거미줄이었다.
꼬리조팝나무꽃(만개한 꽃)
나비가 거미줄에 걸리자 삽시간에 공포영화처럼 오싹 해졌다. 흰나비가 날갯짓을 하면 할수록 거미줄은 더 많이 달라붙었다. 주변에 거미는 보이지 않았지만 나비는 종이조각처럼 힘이 없어 보였다. 거미줄에 완전히 걸려버렸다. 얼핏 보기엔 엉성한 줄이었지만 나비가 파닥거리자 더 팽팽해지며 움직이는 나비를 붙잡았다. 꽃을 찾아왔는데 거미가 쳐놓은 덫에 그만 걸리고 만 것이다.
나비들을 따라 춤추며 걷는 기분이었는데 갑자기 벌어진 일에 죄책감이 들었다. 나비를 구할 방법이 없을까?
내 손으로 거미줄을 끊으면 나비가 도망갈 수 있는 걸까? 이미 나비 날개는 종이처럼 찢겨 버렸다. 끈끈한 거미줄은 모든 걸 다 계산한 듯 보였다. 거미가 하루 종일 기다렸던 먹이일 수도 있었다. 할 수 있는 건 그냥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자연이 하는 일을 나서서 바꿀 수 없는걸 잘 알고 있다. 그래도 나비가 측은했다. 꽃이 원망스러웠다. 꽃이 피지 않았다면 나비는 생을 다 살고 죽음을 맞이 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하지만 꽃이 있어야 나비가 살아갈 수 있다. 원망하는 일도 어느 쪽을 선택할 수 없었다.
나비가 죽어가는 걸 계속 볼 수 없었다. 가슴 어딘가가 철렁 내려앉은 기분이었다.
나비를 모른 척하고 뒤돌아 섰다. 눈앞엔 분홍 꽃들이 손을 흔들며 만발해 있었다. 하지만 거미줄이 출렁거리는 모습이 아른거려 꽃을 볼 수 없었다. 꽃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빠르게 걸었지만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죽음 앞에 죽을힘을 내고 있는 나비의 심정을 모른 척한다는 기분도 잊어야 했다. 나비가 날개를 팔락거리는 소리가 바람소리보다 크게 들리는 듯했다.
잠시 바람을 쐬야 했다. 중랑천을 내려다보니 물결은 잔잔했고, 모든 것은 제자리에서 돌아가고 있는 듯했다. 자연이란 곳은 가까이 들여다보면 너무도 가혹하다. 꽃이 다 피지도 못하고 꺾인 걸 봐도 속이 상한데, 거미줄에 걸린 나비를 목격한 일은 죽음과 삶을 한꺼번에 흔들어 놓았다.
엄마로 나는 늘 줄타기하는 심정이었다. 죽을 듯 힘이 없던 나도 죽음 앞에 흰나비보다 나은 것일까?
우리가 사는 삶은 어떤가? 사람은자연의 먹이사슬에 꼭대기에 있다. 그런데 사람도 죽음 앞에선 어쩔 수 없다. 사람들끼리도 약자와 강자가 나뉜다는 건 묵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엄마라서 아이들을 마음대로 하려고 욕심을 부렸던 건 아니었을까? 뭔가 문제가 생겼다면 해결해야만 하고, 잘 못된 것은 고쳐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때인 듯싶다. 강박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쉬어야 했다.몰아치듯 나를 몰아세운 듯했다. 감정에 매몰되어 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