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누구신가요?

내 그림자

by 무쌍

내리쬐는 태양을 피하고 싶었지만 나무 그림자가 눈에 들어왔다. 빛을 향해 걸을 때마다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회색 유령 같다. 은 곳으로 고개를 돌리면 앞에선 사라지지만 어린 영혼처럼 자신의 그늘이 있다는 걸 단풍나무도 알고 있을 것만 같았다.

혼자서 나무를 보고 있을 땐 생각이 춤을 춘다. 나무를 물끄러미 보고만 있는대도 책을 읽은 듯 시작과 결말을 다시 떠올리며 금방 돌아서지 못했다. 가을 단풍으로 물들면 그림자는 무슨 생각이 들까? 꽃으로 변한 나무를 보며 축하해줄까? 아니면 곧 겨울이 온다는 걸 일러줄지 모르겠다. 목덜미가 뜨끈해질 때까지 보고 있으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내 얼굴과 나무를 번갈아 보았다. 내가 나무를 본다고 너무 오래 있었나 보다.


아이와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나무 그림자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아이가 그림자를 보더니 한마디 한다.

"나무 뒤에 나무인데, 나무 앞에 나무처럼 보이기도 해요."

"너도 저 그림자가 희한하구나."

단풍나무@songyiflower인스타그램

벽에 비춘 나무 그림자를 보는 건 풍경화 그림 한 점을 보는 듯 여러 번 다른 시선으로 들여다보게 했다. 바닥에 길게 늘어진 그림자도 아니었고, 가지가 드리워지며 생긴 작은 그림자도 아니었다. 완전히 나무를 그대로 닮은 그림자였다.

그림자는 어두운 곳에선 보이지 않는다. 오직 밝은 곳으로 나와야 그림자가 생긴다. 우리 몸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듯 내 몸에 태양이 비추며 거울처럼 나를 확인하게 해 준다. 그래서 나는 빛을 쫓아다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 존재를 확인하고 스스로 빛을 내기 위해서 말이다. 면의 나를 만나려면 늘 밝은 곳으로 나와야 했다. 어두운 방에서는 쉽게 우울함에 빠졌다. 밖으로 나와 길을 걷고, 꽃을 좇거나 나무를 만나야 비로소 내가 찾던 내가 보였다. 그림자는 어쩌면 유령처럼 으스스하기도 하지만, 알고 나면 '있는 그대로' 내 모습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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