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죽이는 사람들

소나무의 죽음

by 무쌍

뉴스를 있는 그대로 믿기엔, 가짜 뉴스가 넘치니 골라보는 안목이 필요한 세상이다. 신문 사설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던 시절도 옛말인 듯하다. 그런데도 눈에 띄는 기사들은 환경이나 자연과 관련된 이다. 사람이 자연에 저지른 일들로 환경이 파괴되는 일은 계속되고 있다.

한라산 구상나무도 보전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멸종위기이다. 환경이 변하며 자연이 견디지 못하는 것을 멈추는 일은 쉽지않아 보인다.

나무 주변의 돌을 조경석으로 팔아넘기고 거수인 나무 주변을 시멘트로 발라버린 행정공무원이 징계받았다는 기사, 교통체증 때문에 100년 가까이 된 나무를 잘라버린 공무원들이 뒤늦게 마을 주민들에게 질타를 받았다는 기사, 아름다운 길로 유명한 숲을 도로를 넓힌다며 잘라내다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쳐 멈춘 이야기, 대형 교통사고가 교차로에 공사로 뽑아버린 나무 때문이는 반성의 소리도 보도 되었다.


30년 넘은 가로수 3그루가 나란히 죽었다는 기사가 있었다. 고사한 이유를 확인해보니 나무와 땅에서 약품 성분이 검출되었는데 사람이 고의적으로 한 일이었다. 기사엔 주변 상인들이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 치우기가 버겁고, 큰 나무 때문에 간판이 가려서 영업에 방해된다고 민원을 제기했다고 한다. 민원이 해결이 안 되자 나무를 죽인 듯 하지만 본 사람이 없어 처벌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토지 개발에 다툼이 일어나자 소나무에 구멍을 내어 농약을 투입해 600그루의 나무를 죽인 일도 있었다. 역시 누가 했는지 찾지 못했고, 소나무가 꼼짝없이 자신의 자리에서 몰살당했다.

며칠 전에 또 소나무 죽음이란 기사를 봤다. 가로수와 주택단지 조경수 여러 그루가 한꺼번에 고사했는데, 누군가 나무에 구멍을 내고 농약을 주입했다고 한다. 나무는 또 죽었지만, 범죄자를 찾지 못했다.


가로수나 조경수는 사유 없이 훼손하고 고사시킬 경우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 원 이상의 벌금형을 내린다고 하지만 전히 나무 살인은 일어나고 있다.


자기 정원에 심었던 나무를 자르는데 뭐라 할 사람은 없다. 그러니 주인이 하고 싶은데로 할 수 있다. 하지만 고의적으로 살인을 하듯 무서운 행위가 계속 기사거리가 된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나무가 무슨 죄란 말인가.


소로우가 쓴 단편 하나가 떠올랐다. 짧은 애도의 글 같은 <소나무의 죽음>을 다시 읽어보고 싶었다.


가장 웅장한 나무였다. 햇빛이 솔잎에 온 빛으로 반짝이며 부서졌다.... 자 이제 그 순간이 왔다. 나무 밑 난쟁이들이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 현장으로부터 달아나고 있다. 죄 많은 톱과 도끼를 떨어뜨린다.
처음에 나무는 얼마나 천천히 장엄하게 기우는지!
마치 살랑거리는 여름 바람에 흔들릴 뿐이라는 듯 한숨 한번 쉬지 않고 원래 있던 공중으로 되돌아오려는 것처럼 말이다.... 나무는 땅을 덮쳐 끌어안고 자신을 이루던 요소들을 흙과 뒤섞는다. 그리고 이제 모두 다시 영원히, 눈도 귀도 고요해진다.....
200년에 걸쳐 차츰 하늘을 향해 자라며 완성된 식물 하나가 오늘 오후에 사라졌다. 왜 마을 종은 애도의 종소리를 울리지 않는가?
-<소나무의 죽음>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그의 목소리는 애도의 글로 표현되었다. 그가 목격한 소나무는 목재가 되기 위해 벌목되고 있었다. 우듬지에서 큰 나무들이 잘려나가고 남은 마지막 나무였다고 한다.

나도 소로우처럼 애도의 글이라도 쓰고 싶어 졌다. 하지만 우리 땅에서 벌어지는 일은 좀 다르다. 그들이 노리는 건 잘 자란 나무를 목재를 쓰려는 것도 아니었다. 사적인 욕망에 휠 쓸려 저지른 범죄일 뿐이었다. 억울한 나무들이 더 생기지 않게 나무와 함께 사는 법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

리도 영원히 살지 못하는 자연의 일부일 뿐이다. 게다가 사람보다 더 긴 수명을 유지하는 나무가 있다는 것을 잠시 잊었다. 노거수로 남은 나무들이 보여주는 웅장한 모습은 람보다 분명 강한 존재라고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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