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엄마노트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이렇게 좋구나

보이지 않는 일

by 무쌍

시원한 바람을 들이기 위해 현관문을 열었다. 태양 빛이 들어오게 베란다 블라인드를 걷었다. 나무가 보낸 바람이 집으로 들어와 반대편 베란다로 나간다. 바람이 좋아서 현관문을 자주 열어둔다. 집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우리 집으로 좋은 소식을 가져올 것만 같아 반갑기 때문이다. 가끔 나무에 앉은 까치와 눈이 마주치는 날은 알 수 없는 힘을 얻은 것처럼 느껴졌다.

현관문을 열면 보이는 나무들

새벽 4시, 음식물쓰레기 수거차가 덜컥 쿵 소리를 낸다. 젖먹이 아이도 없는데 수유를 할 때처럼 매번 그 소리에 눈을 감은채 잠이 깬다. 업어가도 모르게 잠든 아이들은 새근새근 잘 자는데 말이다. 문득 보이지 않는 곳에 일하는 분들이 많다는 걸 깨달았다. 두 잠든 고요한 시간 이 시간에 일하는 분이 있다니 덕분에 편하게 사는구나 싶어 졌다.

다시 잠을 청했지만 또 다른 소리가 들렸다. 부지런한 새가 아침 기상송을 부른다. 새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차례차례 재잘거리듯 시끌시끌하다. 요즘은 평소에 듣지 못했던 새소리가 들린다. 새 전문가를 초대해서 무슨 새인지 묻고 싶어 진다. 여러 가지 새소리를 들으면 늘 궁금했다. 하지만 다시 잠들기가 쉽지 않았다. 창밖은 검푸른 색으로 하루를 시작하기 때문이었다.


5시가 지나면 새벽 배송차들이 순서대로 들어온다. 차에 시동이 켜진 채 손수레 끄는 소리가 난다. 오늘은 어느 집에서 배송을 시켰을까? 금방 차가 나가는 걸 보니 무거운 짐은 아니었나 보다. 새벽 배송을 위해 다른 배송회사가 줄지어 온다.


잠들지 못하고 베란다로 나갔다.

베란다 밖으로 1층이 훤히 보이는 집이라 택배차는 금방 눈에 띄었다. 이 시간에 물건을 싣고 오는 분은 언제 주무실까?

잠든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이 많다는 건 우리가 편하게 살고 있다는 걸 느끼지 못하게 한다. 보이지 않은 것엔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6시가 되자 우리 동 경비원 아저씨가 긴 싸리비를 들고 청소를 시작하신다. 동과 옆 동의 긴 싸리비 소리까지 더해져서 싹싹 쓰는 소리는 비슷하지만 다른 리듬으로 들렸다.

싸리비

고마운 소리가 이른 아침을 시작하게 했다. 읽다만 책도 끝까지 보고, 밀린 사진 정리도 좀 했다. 가족들이 먹을 아침도 여유 있게 준비하니 나쁘지 않았다. 아침 책을 하고 잠시 벤치에 앉았다. 등 뒤로 바람이 살살 불어왔다. 바람이 땀에 젖은 몸을 시원하게 해 주었다. 앞에서 바람이 불었다면 먼지가 섞어 올까 신경을 쓰며 얼굴을 가렸을지 모르겠다. 뒤에서 부는 바람은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벽에 만났던 소리의 주인공처럼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글을 써야겠다는 다짐 해본다. 벤치에 앉은 동안 등 뒤에서 말없이 나를 토닥여주듯 불어오는 바람이 좋았다.

바이러스가 만든 일상은 또 비상등이 켜졌다. 다음 주부터 원격수업으로 아침 산책을 못하게 되었지만, 아쉬운 마음도 바람이 아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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