윙윙거리며 선풍이가 돌아간다. 한낮 30도가 넘는 기온이 놀라웠다. 학교 앞에 엄마들은 서로 보자마자 "더워도 너무 덥네요.", "너무 덥다." 똑같은 인사를 나눴다. 교문이 잘 보이는 작은 그늘에 숨어 아이를 기다렸다. 가방을 메고 나오는 아이들은 이마에 송골송골 땀을 흘리면서도 덥다 소리를 안 했다. 놀이터에서 놀 수 있는지 더 궁금해했다.
아이들이 노는 걸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개미 소굴과 무당벌레를 발견한 아이들이 소란스러웠다. 개미를 손에 하나 올리고 까르르 웃는 아이 뒤로, 처음 보는 아이가 "아줌마, 무당벌레 애벌레에요. 귀엽죠?" 말을 건다.
흰나비를 잡은 아이가 나타나자 시선은 금방 쏠렸다. 또 다른 아이가 손에 개미를 올리고 구경꾼을 모았다. 작은 곤충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자연의 경이로움을 아는 듯했다.
놀이터 옆 느티나무 숲
느티나무 그늘 아래 놀이터는 시원했지만, 나무 숲 아래 들어간 아이들은 땅을 파거나 곤충을 찾아다녔다.
빨개진 얼굴의 아이는 흰 마스크 사이로 숨소리 거칠었다. 야속한 펜데믹도 이젠 일상이 되었다. 하굣길에 짧은 시간 아이들은 가장 하고 싶은걸 하고 논다. 매일매일 하고 싶은 건 바뀌지만 아이들은 비슷비슷한 놀이를 한다.
가장 많이 하는 놀이는 단연코 '찾기'다. 함께 놀 친구를 찾거나 개미나 무당벌레 같은 곤충을 발견한다. 떨어진 돌멩이나 나뭇가지, 구슬을 줍는다. 아이들이 떠난 자리는 예전 모습 그대로 고요해진다. 자연에서 노는 아이들이 남기는 건 수집된 흔적이나 땅을 파놓은 작은 구멍 같은 것이다.
더운 날에 여름옷을 정리하느라 반나절을 씨름했다. 아이들 옷은 작아진 옷만 빼고 나니 금방 끝이 났다. 문제는 내 옷이었다. 다시 보관함에 넣고 싶었다. 거의 입지 않아 새것 같은 옷이었다.
반대로 새 옷일 땐 더럽혀질까 신경을 쓰며 입던 티셔츠가 집에서 입는 옷으로 바뀌었다가, 결국 의류수거함으로 들어갔다. 구멍 나기 시작한 옷은 무엇이 묻어도 이상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잘 입은 옷은 자연스레 헌 옷이 되는데 , 입지 않고 보관된 옷들을 문제였다.
오프라쇼에 여러 번 소개될 정도로 유명했던 사라 밴 브레스낙의 <혼자 사는 즐거움>을 다시 꺼내 읽었다. 그때 결심한 잡동사니 치우기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그녀의 글들은 언제나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
필요와 욕구를 구별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었고... 없어도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는 물건을 파악하면 '분별력'이라는 재능이 생긴다. 분별력이 생기면 최고를 요구할 수 있다. 잡동사니로 삶을 채우지 마라. 가볍고 비어 있는 삶 속에서 간결한 마음으로 최고의 삶을 기다리고, 또 그곳을 향해 걸어가라. - 사라 밴 브레스낙의 <혼자 사는 즐거움> 최고의 것만 받아들이기 중에서
책이 알려준 분별력은 까맣게 잊어버렸고, 책을 다시 읽으며 그것이 무엇인지 기억을 더듬어야 했다. 그리고 잃어버린 분별력을 이용하는 대신에 아이들처럼 원하는 걸 찾기로 했다. 뭘 좋아하는지 찾는 것이 정리의 시작같았다. 산처럼 쌓인 옷들 속에 가장 좋아하는 옷 만 골랐다. 그리고 행거에 손이 잘 닿는 곳에 걸었다. 옷가게 행거에 걸린 신상 옷은 아니었지만 보는 것 만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애매한 옷들이 남았다. 입고 싶었지만 소장만 했던 옷, 입을 때마다 고민이 되는 옷, 나쁜 기억을 떠올리는 옷, 입으면 불편한 옷, 그냥 입기 싫어진 옷, 다양한 사연이 담긴 옷을 한쪽에 쌓아 두었다. 딱 하루만 더 고민해보려고 한다.잠을 푹 자고 일어나면 '필요와 욕구'를 분별할 능력이 생길지 모르겠다.아직도 나는 정리하는 법을 찾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