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낙비가 반가운 날이었다. 나팔꽃이 춤을 추듯 흔들거려 우산을 어깨에 걸치고 꽃을 찍었다. 비가 와도 태양이 뜨거워도 나의 사진 찍기는 멈출 수가 없다.
나팔꽃은 매일 아침 새로운 꽃이 핀다. 테두리를 하얗게 두른 플레어스커트처럼 통이 넓은 나팔꽃이 피었다. 진한 분홍색도 곱지만 큰 꽃이라 더 눈길이 갔다.매일 손질해주는 손이 있어서 인지 흠잡을 때가 없는 나팔꽃 덩굴이었다.
나팔꽃(모닝글로리)@songyiflower
매일 같은 시간 글을 쓰기 시작한다. 저녁을 먹고 난 그릇들을 설거지통에 몽땅 넣어두고 앉았다. 설거지가 신경이 쓰여 벼락치기하듯 끝내니 머뭇거리다가 쓰지 못한 말들은 접시에 뭍은 음식찌꺼기처럼 티끌만 남기고 사라져 버린 후다. 이제 할 수 있는 건 방금 설거지를 한 접시에 음식을 새로 만들어 담아내듯 글을 쓰는 것이다. 그런데 자꾸 앞을 가로막는 것이 있었다.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은 이유를 거슬러 올라갔다. 큰 기대를 걸었던 일이 잘 되지 않으면 오히려 단념이 쉽다. 그런데 작은 일에 실망하고 꼬리를 물고 종일 여운처럼 남았다. 아이들에게 늘 '실망하지 마'라고 말하는 엄마지만 내가 더 실망하고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다.
비가 내리니 나팔꽃이 더 생각난다. 폭우가 쏟아지기 전 다시 보러 가려고 길을 나섰다. 어디서든 나팔꽃을 마주치면 일단 멈추고 웃게 된다. 오래 머물러 주지 않으니까 말이다. 매일 새로운 꽃이 피긴 하지만 반나절이면 접은 우산처럼 시들어 버린다.
다행히 나팔꽃은 비속에서도 웃고 있다. 꽃을 보니 고단함이 어디론지 사라졌다. 혹시 실망한 기분 때문에 지금 아이들의 웃는 얼굴을 못 본건 아닐까? 꽃은 잠시 후면 떠난다고 수선을 떨며 보러 왔는데 말이다. 아이들을 보듯 꽃을 볼 수가 없었다. 꽃 속엔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했던 이기적인 내가 보였기 때문이다. 흠잡을 때 없는 꽃을 보며 알게 되었다. 아이가 뭘 잘해서 엄마의 기대를 맞춰 준다고 존재감이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나팔꽃처럼 아이들의 존재감은 있는 그대로를 말하는 것이었다. 꽃이 주어진 대로 자기 색으로 피듯 아이들도 그렇게 자랄 것이다. 꽃을 키우는 정원 주인의 마음처럼 아이들도 자신이 타고 난 대로 커가길 바란다.
아이들이 아직 꽃봉오리도 만들기 전인데 엄마가 너무 앞서 갔나 보다. 나팔꽃 덩굴엔 곧 피어날 꽃 봉오리들이 대롱대롱 커가고 있었다. 왠지 꽃이 하는 말은 진심인 듯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