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해바라기

by 무쌍

폭우가 쏟아지는 길을 달렸다. 양산을 들고 있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비를 피하러 간 상가 입구는 고요했다. 바로 앞 가로수엔 플라타너스 나무 두 그루가 다정히 서 있었다. 소나기를 구경하기 좋은 자리 같았다. 키와 모양이 비슷한 나무는 몇 해나 이곳에 같이 있었을까? 람들이 세운 건물 보다 더 높은 걸 보니 그 보다 더 오래전 심었을 것이다. 대한 나무는 시원하게 샤워를 하듯 나뭇잎을 이리저리 흔들며 구석구석 비를 맞았다.

쏴아 소리를 내며 큰 샤워기처럼 비는 뜨거운 공기 속에 잠시 미지근했지만 곧 차가워졌다. 비가 나를 꼼짝 못 하게 했지만, 떤 거부감도 없이 비가 만든 섬에 있기로 했다. 그리고 섬에 나 홀로 있다는 기분에 누군가가 그리워졌다.


쓰레기 섬에 갇힌 해바라기@songyiflower인스타그램

쓰레기 섬에 갇힌 듯 있던 해바라기가 떠올랐다. 예전에 원추리를 만난 쓰레기더미 근처에 소리 없이 초록 기둥이 일어났다. 쭉쭉 올라간 가지 끝엔 쌍둥이처럼 똑같은 꽃이 피었다. 지만 예전보다 쓰레기는 더 많아졌다. 공사자재부터 음식찌꺼기, 스티로폼, 음료수병이 뒹굴었다. 비닐봉지에 채워진 알 수 없는 쓰레기들 점점 어지럽게 쌓였다. 어쩌다 이렇게 까지 사람들은 쓰레기를 모아두는 걸까? 그 틈에 해바라기는 왜 피었을까? 아마 예전엔 화단이었을 것이다. 돌보지 않는 화단은 금방 야생초 덤불이 되었고, 여름이 되자 계절에 맞는 해바라기가 솟아났다. 그런데 해바라기 앞으로 갈 수가 없었다. 금방 쏟아질 듯 아슬아슬한 쓰레기 더미가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에 놀랐지만, 바짝 마른 대지가 금세 촉촉해졌고, 시들했던 식물들을 기쁘게 해 주었다. 새들도 목을 축이며 더위를 피하는 듯했다. 그러는 동안 난 섬에 갇힌 채 빗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긴 호흡을 했다.

몇 주 동안 원하지 않는 전화들을 받아야 했다. 나에게 일어나지 않았다면 더 좋았겠지만 결국은 모두 품어야 했다.

나를 흔들었던 소동은 줄을 선 듯 찾아왔다.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었는데 소나기 덕분에 자리를 벗어난 듯 시원해졌다. 일상에 돌아가지 못하는 시간이 마치 휴식 같았다. 바람처럼 달콤한 시간은 곧 지나갔다. 비는 점점 줄었고 금방 우산 없이 걸을 수 있었다.

집 근처에 왔을 때 경비 아저씨의 손에 가지런히 정리되는 쓰레기봉투가 보였다. 크기 별로 차근차근 올려진 풍경을 만든 그분의 손이 너무도 감사했다. 잘 정돈된 봉투들은 쓰레기 같지 않고 단정해 보였다. 분리수거함엔 라벨이 깨끗하게 제거된 투명 페트병이 담겨있고, 아이스팩 수거함은 책을 눕혀놓은 듯 가지런했다. 해바라기가 갇혀있는 쓰레기 더미는 아수라장이지만 이곳은 모든 것이 가지런했다.


소나기를 만났던 나는 홀로 섬에서 달콤했지만, 쓰레기통이 되어버린 화단의 해바라기는 갇힌 듯 답답해 보였다. 식물은 뿌리를 내리면 움직일 수가 없으니 말이다. 그 자리가 어떤지 궁금했다. 땅을 뚫고 나왔는데 다른 꽃 친구도 없이 달랑 혼자라 외롭지 않았을까? 마치 혼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듯 준비한 꽃봉오리가 많았다. 해바라기가 준비한 것을 모두 보고 싶다.

그러고 보니 소나기가 나만 기쁘게 해 준 건 아니었나 보다. 깨끗한 물로 온몸을 맘껏 샤워한 듯 해바라기 두 송이가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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