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태양이 여전히 타오른다. 시원한 나무 그늘이 간절한데 건물 뒤에 긴 수양버들 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보니 반가웠다. 중랑천엔 풍채 좋은 나무가 있지만 워낙 물가와 가까워서 그늘을 맛보지 못했다. 내리쬐는 태양을 피할 수 없으니 중랑천은 발을 끊었는데 수양버들을 눈앞에서 보니 물가에 나온 듯 서늘해졌다. 갑자기 예전에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나무가 보고 싶어 졌다.
어느 해 여름이었다. 산책로에 폼을 잡은 수양버들이 보였다. 왠지 그 옆으로 가면 나무 아래 쉬어도 좋을 듯싶었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중랑천은 사람 키만큼 자란 야생초 때문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나무 아래 그늘은 잠시 서 있을 만했다. 하지만 금방 사람들이 많아졌고, 누군가 내 어깨를 툭 치는 것 같아 뒤돌아 봤다. 분명 사람들은 있었지만 나를 알만한 사람은 없었다. 잠시 그늘을 맛본 사람들은 하나둘 사라졌다. 다시 혼자 그늘을 즐기고 있는데 이번엔 머리 위로 툭하고 치는 게 느껴졌다.
'저런 수양버들 가지였구나!.'
바람이 살랑이며 낚싯줄 같은 가지가 장난치듯 내 몸을 건드렸던 것이다. 멍하니 있는 내 모습이 못마땅한 듯 자꾸만 툭하고 치는 것 같았다.그렇게 우린 여러 해를 보냈다
수양버들 2020.2@songyiflower인스타그램
벌써 지난겨울 일이다. 이삿짐을 싸다가 중랑천으로 나무를 보러 갔다. 무슨 날인지 하늘은 지구 밖까지 보일 듯이 맑고 멀리 한없이 푸르렀다. 구름은 솜털처럼 보송보송 뭉치들이 손에 닿을 듯 가까이에서 뭉쳐지고 흩어지는 것을 반복했다. 자전거 도로엔 영하의 기온이 무섭게 얼어붙게 하니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목으로 파고드는 냉기를 잊은 채 빈 도로를 맘껏 걷는 자유를 기억하고 싶었다. 사진 몇 장을 찍으며 곧 나는 장갑을 두고 온 것을 후회했다. 바람이 매서워 눈가에 자꾸 촉촉해졌고, 나무와 나의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기엔 너무도 좋은 날씨였다.
두 그루가 나란히 서있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몸집이 더 커진 나무는 벌목이 되었고, 남은 수양버들은 도로를 지키고 있었다. 지금도 구름이 지나고 있는지 태양은 나무 밑으로 그림자를 만들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제주를 떠나며 친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싶었다. 내가 태어난 곳에서 가장 멀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가지 않을 작정이었다. 가능한 만날 수 있는 친구들을 거의 만났고 떠난다는 내색 없이 술을 가장 많이 마신 날이 이어졌다. 그렇게 얼마 뒤 나는 섬을 떠났다.
제주를 떠날 때처럼 수양버들이 있던 마을을 훌쩍 떠나왔다. 유난히 좋았던 날씨, 여행 같던 산책, 밤늦게 까지 나눴던 수다, 친구 같은 수양버들, 산길을 따라다니던 큰 도서관, 건너 마을 산아래 텃밭, 장미터널을 달리던 아이, 추억 상자에 한 장씩 넣어둔 것들을 꺼내봤다. 지금은 멀리 있지만 친구는 사진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