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밭에서 생긴 일

여름 중랑천

by 무쌍

얼핏 초록색으로만 보이는 풀숲은 자꾸 멈추며 살피게 했다. 야생초가 꽉 찬 산책로는 아무래도 걷는 속도가 나지 않는다. 살펴볼 것이 많기 때문이다. 숨은 듯 풀사이로 뒤늦게 핀 패랭이꽃이나 끈끈이대나물이 꽃을 피운 모습은 네잎클로버 찾기 만큼 설렌다. 작고 귀여운 잎이 머리빗처럼 가지런히 달린 차풀잎은 꽃처럼 매력적었다.


꽃양귀비가 사라진 곳엔 코스모스가 크고 있다는 안내판이 곳곳에 달려있었다. 봄꽃이 떠난 빈 꽃밭을 코스모스가 채울 모양이었다.

그런데 꽃밭 주변에 누군가가 뽑아놓은 풀 뭉치가 보였다. 가만히 보니 누군가 바랭이를 한 줌씩 뽑아 놓는 것이었다. 뽑힌 바랭이 뭉치는 을 따라 서너 개가 더 있었다.

누가 바랭이를 뽑고 있는 걸까?

바랭이는 참 흔한 잡초다. 씨를 뿌리지 않아도 어디서든 흔하게 자라는데, 이미 난 텃밭에 무섭게 자라는 바랭이 맛을 봤었다. 정원에 깔아놓은 잔디밭에도 바랭이는 참 성가신 존재로 버지의 속을 썩였었다.


칠 뒤 바랭이를 뽑는 사람을 만났다. 예상대로 꽃밭을 관리하는 분은 아니었다. 리고 옆엔 할머니가 서 계셨는데

"아이고, 그냥 대자연에서 서로 부대끼며 커가게 둬야지. 그걸 어느 세월에 뽑고 앉았어요."

"이거 놔두면 코스모스가 크질 못해요."

답을 한 여자는 다시 풀을 뽑았다. 머니도 별 말없이 옆에서 지켜봤다. 은 상대방을 이해해보려 하는 건지 한동안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있었다. 난 천천히 그곳을 빠져나왔다.

풀숲 틈에 분홍색 메꽃 한송이가 눈에 들어왔다. 직 질 때가 되지 않았지만 꽃잎이 반이나 찢겨 있었다. 방금 벌어진 일처럼 뜯긴 꽃잎 조각은 길가에 뒹굴고 있었다. 득 할머니가 말했던 '대자연'이란 곳에서 벌어지는 것들을 떠올려 봤다. 이렇게 세밀하고 작은 것부터, 폭풍우처럼 한꺼번에 장소를 바꿀 만큼 강하고 장엄한 스케일도 있을 것이다.


바랭이를 뽑는 손은 몇 방울의 단비처럼 작은 코스모스 싹을 지켜줄 수 있었을까? 아니면 큰 느티나무에 떨어진 몇 방울의 물처럼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걸까?


바랭이를 뽑는 마음을 알 것도 같았지만, 할머니가 한 말이 더 귓가에 맴돌았다. 화분에 자라는 화초도 주인이 하고 싶은 대로 자라주지 않기 때문이다. 외의 정원은 그 눈치 보는 대상이 더 늘어난다. 바로 날씨와 곤충이나 동물, 잡초처럼 주변의 식물들이다. 하물며 중랑천 야생의 공간은 수없이 드나드는 사람과 자전거, 차들이 포함될 것이다. 모든 것이 대자연에 속하는 것들이었다.


어쩌다 쓰러진 생초를 일으켜 세우지 않고, 그냥 두는 것은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평소에 잘 지내다가도 불쑥 들이닥치는 외로움을 오롯이 혼자 느끼고 견뎌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쓰레기를 아무렇게나 버리는 손 대신, 바랭이 뽑는 손이 꽃밭의 우렁각시처럼 도움을 주는 것이라 믿고 싶기도 했다. 아니면 자연 속에서 코스모스가 스스로 힘으로, 바랭이보다 더 커야만 꽃피울 힘을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중랑천에 핀 코스모스@songyiflower인스타그램

꽃은 정원에 피나 야생에 피나, 모두 사랑스럽게만 한 존재다. 그렇지만 여름 한철 벌어지는 잡초와의 전쟁은 막상막하의 힘겨루기처럼 여러 번 치러야 한다. 생생히 살아있는 자연 속,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선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중랑천 야생의 코스모스는 이미 곱게 피고 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직 자라고 있는 꽃밭에 코스모스가 핀 후에야 가을을 노래할지 모르겠다.


그 뒤로 바랭이 뽑는 손이 아닌 다른 손들도 만났다. 망초만 뽑는 손, 키가 큰 잡초만 뽑는 손도 만났다. 이미 많은 손들이 코스모스를 키우며 가을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나만 모르고 지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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