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잠을 잔 아이는 등교시간 5분 전에 겨우 들어갔다. 매일 아침은 1분이 아쉽고, 가족들이 기상을 미루다 보면 집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화장실에서 줄이 막히니 아이들 재촉하려고 잔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그래도 아침 전쟁이 끝나니 한숨 돌리며 여유로운 산책을 나섰다. 비로소 나의 시간을 시작되었다.
걷다 보니 머릿속이 차분해지며, 소란했던 일들이 사진첩을 넘겨 보듯 정리가 되었다. 여름이 막 시작할 때 천둥처럼 뒤통수를 치던 일들도 떠올랐다. 그땐 분명히 두통이 심했지만 이젠 기억나지 않는다. 시간이 약이라는 건 지나고 나서야 효능을 알 수 있으니 어쩔 수 없나 보다. 달리기를 하듯 그 시간은 지나가버렸기 때문이다. 고통을 잊게 해 준 것이 시간이지만, 그냥 흘러가버릴 까 봐 노심초사하는 것도 시간이다. 시간이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지만, 핑계가 많은 엄마가 되었다. 매일 글을 쓰고 싶지만, 늘 쫓기듯 겨우 마감하는 기분이다. 시간만큼은 내뜻대로 되지 않았다.
산책로에 핀 꽃이 분위기가 바뀌었다. 차례를 기다렸던 새로운 꽃이 하나씩 피기 시작했다. 며칠 전부터 과꽃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분홍색 꽃이 피었고, 곧 보라색 꽃이 뒤따라 피었다. 화단마다 언제 심었는지 패랭이꽃이 있던 옆자리를 차지한 과꽃이 보기 좋았다. 한송이 과꽃은 방금 학교에 간 아이처럼 귀엽기만 했다.
내일 그 자리엔 없을 과꽃과 느티나무
잠시 뒤 아이의 하교 길이었다. 시끄럽게 소리를 내며 포클레인이 화단 몇 개를 정리하고 있었다. 아침 산책길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몇 그루가 산산이 부서진 채 트럭에 실려갔다. 첫 꽃을 피운 과꽃도 온 데 간데 없어졌다. 앞으로 더 많은 화단이 정리될 예정인가 보다, 주자창과 재활용 쓰레기 처리시설을 짓기 위해서다.
사라진 꽃과 나무의 내일은 없어졌다. 매번 이렇게 사라지는 존재들에게 깊은 연민을 느낀다. 비가 내려 차가워진 공기처럼, 가슴 어딘가도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 위로하듯 나에게 말을 건다.
'지금 무언가를 해놓지 않으면 또 사라질 거야.'
계절의 변화 속에 시드는 꽃들이 아쉽고, 용도가 바뀌면서 사라진 화단도 그립다. 시간으로 사라진 존재를 기록하는 일은 쉽게 끝나지 않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