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모차에 앉은 아가에게 알록달록 핀 꽃을 설명하는 목소리가 참 다정하기만 했다. 꽃을 보여주는 마음은 저절로 상냥한 목소리를 불러오는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알아듣던 그렇지 않던, 열심히 설명하는 어른들의 마음을 아이도 알아듣는 듯싶었다.
돌이 아직 안된 듯 한 아기가 유모차에 앉아 여기저기 손가락을 가리키는 대로 척척 대답하고 있는 아빠가 보였다. 잠시 뒤 그 아빠도 아이와 화단으로 왔고, 꽃 색깔을 하나씩 말하며, 향기를 맡아보게 하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아이는 팔랑 거리는 나비가 눈에 들어왔는지 양팔을 날갯짓하며 신이 났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저랬구나' 싶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포대기를 한 아이에게 장미꽃 향기를 맡게 하려다 울린 기억이 났다. 아이를 유모차에태우고 다니며 꽃만 보이면 말했다.
"와! 정말 예쁘다. 그렇지?"
엄마가 매번 꽃을 보면 눈을 떼지 못하는 대도, 아이는 심술 내지 않고 빙그레 웃어주는 날이 더 많았다.유모차가 필요 없어진 아이들은 꽃에 관해선 시큰둥해졌다. 길가에 핀 꽃을 쫓아가면 아이들은 엄마가 또 꽃 타령한다며 손사래를 치게 되었다.
매일 산책을 가는 공원엔 작은 정원이 있다. 부지런히 정원사들이 잡초를 뽑고 물을 주고 돌본다. 정원의 단골손님은 아가들과 할머니들이다. 아기를 데리고 온 어른들은 꽃 앞에서 아기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밝게 웃는 목소리로 아기에게 말하고 또 말하며 감탄을 하게 한다. 아기들에게 꽃을 보여주려는 어른들의 진심이 느껴졌다.
그와는 반대로 할머니 들은 조용히 꽃 앞에서 혼잣말처럼 '곱다'라고 말하신다. 잠시 굽은 허리를 펴고 꽃을 보는 어르신들을 보면 삶의 평온함까지 느껴졌다.
우리 어른들에게 꽃은 어떤 의미일까? 왠지 꽃은 오랜 수고로움 끝에 피는 성공의 의미 거나, 노력의 대가라는 표현으로 더 많이 쓰이는 듯하다. '언제면 꽃이 필까? 내가 피는 날은 언제인가?' 라며 말이다.
문득 아가에게 꽃을 보여주듯, 어린 시절 나에게 돌아가 말해주고 싶다. 가장 상냥한 목소리로 천천히 말을 해줄 것이다.
'신기한 세상이지? 손에 닿는 것은 무엇이든 느껴보렴. 혹시 진한 향기가 좋아 꽃을 만지다 잎에 난 가시에 찔렸다면 엉겅퀴가 튼튼하게 자라서 란다. 달콤한 향기가 머릿속까지 들어와 현기증이 난다면 인동초가 늦은 봄 제때 피었을 거야.
반가운 친구가 찾아오면, 난 동네에 그맘때 핀 꽃을 보러 갔다. 친구에게 덩굴장미가 가장 잘 핀 곳으로 가 사진을 찍어주었다. 답답한 안부를 묻는 대화도 꽃 앞에선 심각해지지 않았다.
꽃밭에서 발견한 인사법은 오랫동안 잊지 않고 싶어졌다.
꽃이 없는 계절에도 누구든 나를 찾으면, 상냥한 단어들만 골라 안부를 묻는 글들을 꽃다발처럼 전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