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때만 되면 사연 있는 며느리가 된다. 주변에선 내게 명절 안부를 물으며 "시댁엔 아들이 하나예요?"아니면 "큰며느리인가 보네요?"라고 묻는다. 그럼 나는 마지못해 "아니오, 막내며느리예요."라고 대답한다. 결혼하고 십삼 년째 명절 때마다 며느리 역할은변하지 않았다. 주변에 묻는 말에 그냥 얼버무릴 수도 있었지만, 굳이 막내라고 밝히는 건 왠지 모르게 억울한 심정이 들기 때문이다.
막내아들과 결혼했지만,친정에서 처럼 장녀 역할을 하는 기분이다. 명절 때마다 음식 준비에 쓰라고 돈이며 선물이 들어온다. 추석선물로 보내온 것들 중에 '투박해서 억울한 사과' 봉지가 하나 있었다. 무농약 사과인데 뜨거운 햇살과 벌레들, 비바람을 견디다 보면 겉모습이 투박해진다는 설명이 쓰여 있었다. 시장에선 팔지 못하는 비상품이었다. 그런데 사과도 억울한 걸 포장지에 구구절절 설명을 해놨는데, 내 구구절절 사연은 어디 가서 풀어야 하나 심술이 났다.
투박해서 억울한 사과 사연 봉투
시시콜콜한 내 하소연은 덮어두고, 산책을 하며 명절 피로를 먼저 털어내고 싶었다. 연휴는 지났고, 시험기간이 끝난 아이처럼 무작정 자유를 즐기고 싶었다. 가을 하늘은 나에게 이제 왔냐고 하는 듯파란 하늘로 반겨줬다. 투명한 하늘에 구름도 솜뭉치처럼 야무지게 생겨 자꾸 사진을 찍게 만들었다. 구름 구경을 하느라, 그만 은행 열매를 밟았다. 마스크를 뚫고 들어오는 화장실 냄새가 진동했다.고개를 들어보니 은행나무에 열매가 잘 익어가고 있었다.
은행은 효능이 많은 나무지만, 아쉽게도 은행 열매를 감싸는 끈끈하고 고약한 겉 부분이 문제다. 나무 아래만 오면 열매를 피하느라 인상 쓴 얼굴로 모두 까치발을 한다. 아이들은 '똥 열매'라고 '꺅꺅' 소리를 지르며 도망가기도 했다. 도시에 떨어진 은행은 혐오 논란이 많다. 신발이라도 묻으면 냄새가 잘 지지도 않을뿐더러, 묻은 줄 몰라 오해받기도 쉽다. 가로수 은행나무 소란을 피해 공원에 들어서니 화단에 은행나무도 열매를 한가득 쏟아내고 있었다. 큰 화단에 떨어진 열매는 터지지도 않은 채 냄새도 풍기기 않았다. 잘 익은 살구가 떨어진 듯 사진으로 담은 풍경은 나쁘지 않았다. 서있는 자리가 다른 것뿐인데, 상대적으로 억울한 신세도 있겠구나 싶었다.
화단엔 산수유가 초록색 열매를 치렁치렁 달렸고, 모과는 부풀어 제법 커졌다. 감나무들도 이제 초록색으로 제 모양을 갖춘 듯 가을은 열매의 계절이었다. 그런데 내 눈에 또 억울한 신세가 보였다. 멀쩡한 모과가 새가 쪼았는지 구멍 난 채 바닥에 쏟아져있었다. 모두 같은 구멍이 나있는 걸로 봐선 같은 이유로 떨어진 듯했다.
억울한 것들을 찾느라 산책이 길어졌다
억울한 마음을 풀어보려고 나섰던 산책길은 생각이 많아졌다. 지난봄부터 열매를 맺느라 나무는 부단히 애를 쓰고, 노력했지만 열매들이 환영받지 못하는 모습에 내 신세도 겹쳐 보였다. 꽃을 보러 나갔지만, 억울한 열매들을 찾느라 산책이 더 길어졌다. 은행열매나 모과 말고도,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잘 익은 대추열매, 아직 익지 않았는데 병이 들어 떨어진 감을 만났다. 집 앞에 오니 한 가득 으깨진 은행 열매가 있었다.
연휴 내내 현관문을 열어 두었더니, 바람에 냄새가 집안으로 들어왔나 보다. 억울한 건 내가 아니라 시아버지셨다. 아버지는 바람이 잘 드는 자리에 내내 앉아계셨다. 그런데 시원한 바람이 느껴질 때마다 아이들도 우리도 화장실 냄새를 맡았다. 아이가 귀에 데고 "엄마 방귀 뀌었어?" 물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할아버지가 의심된다고 막내가 내게 와 속삭였다.
지금도 현관문을 열어 두니 바람이 한 번씩 은행 냄새를 갖고 온다. 범인은 집 앞 은행나무였다. 추석명절은 끝났고 모두 제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연휴 동안 학교에 확진자가 나왔는데, 밀접접촉자 중에 추가 확진자까지 나왔다. 한 번도 전염 사례가 없었는데, 학교도 계속 당부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집안엔 놀이터를 못 간 아이들의 억울함이 진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