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발을 끊었던 중랑천을 다시 찾았다. 숲으로만 다니다 보니 아무렇게나 핀 야생화가 보고 싶었다. 흙을 갈아엎은 곳엔 코스모스 싹이 조금씩 올라오고 있었다. 덤불이 된 여름 꽃들은 거의 지친 기색이었다.
달처럼 고운 꽃을 찾고 있었다. 달맞이꽃은 키가 커져서 대부분 덤불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꽉 물고 있는 꽃 봉오리를 좀 처럼 펼 생각은 없어 보였다. 노란 꽃잎이 보이긴 했지만 이미 시든 잎만 달려 있어 실망스러웠다.
꼬박 이틀을 늦은 오후 중랑천에 갔다. 달맞이꽃은 보지 못했지만 가장 듬직한 가지를 만든 달맞이 몇 개를 찾았다. 그리고 포기 하고 가려는데, 내가 측은했는지 달맞이꽃 한송이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늦은 오후에 만난 달맞이꽃
곤충을 좋아하는 아이는 자연탐험 책을 재밌게 읽고 있었다. 들고 있는 건책엔 <달맞이꽃의 비밀>이란 소제목이 쓰여 있었다. 엄마가 달맞이꽃을 만나고 싶어 한다는 걸 알고 있었을까? 그림책엔 활짝 핀 해바라기 옆에 시든 달맞이꽃이 나란히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다음 페이지엔 둥근달이 떠있고 같은 색 달맞이꽃에 나방이 찾아오는 장면이 그려져 있었다.그림 아래는 분꽃, 박꽃과 함께 밤에 피는 꽃이라는 설명쓰여 있었다. 아!그랬다.
타이밍을 맞추지 못한 탓이었다.
왜 까맣게 잊고 있었을까? 꽃이 너무 많은 탓일까? 쉽게 꽃을 보려고 했었던 것 같다. 내가 보고 싶은 시간에 맞춰 핀 곳만 찾고 있었다. 달이 뜨면 피는 꽃을 달도 뜨기전에 찾고 있었으니 말이다. 새벽엔 꽃이 남아 있을 듯 싶어 최대한 일찍 나서 보기로 했다.
잠은 덜 깼지만 시원한 새벽 공기가 반가웠다. 다시 찾은 중랑천은 푸르스름한 공기가 깔린 채 은은한 달맞이꽃이 남아 있었다. 달맞이 꽃이 만든 길을 따라 걸으니 덩실덩실 마음이 달아올랐다. 작고 노란 점들이 달빛으로여기저기 빛나고 있었다. 지난번 찾은 가장 탐스러운 달맞이 앞에 갔다. 꽃은 지고 있었지만 남은 꽃은 꽃다발처럼 피어 있었다. 그 모습을 담느라 이리저리 찍고 있는데 어디선가 검은 그림자가 느껴졌다.
새벽 중랑천의 달맞이꽃 2020.08.08
할머니 세 분이 달맞이꽃을 찍는 나를 바로 뒤에서 보고 계셨다.
"꽃이 예쁘게 나와요?"
"..."
"아직 피어있네."
"..."
금방 떠나지 않고 내 주변에 계신 분들이 부담스러웠다.
할머니 한분이 길을 재촉하자 자리를 뜨며 한마디 하셨다.
"그래도 밤에 봐야 이 꽃은 참 예뻐요."
아직 밤에 본 적이 없는 난 아이들처럼 그림책에서 그림으로만 봤다. 그분처럼 나도 밤에 핀 모습을 언젠가 보고 싶다. 자기 전 집 앞마당에 나가 달맞이꽃에게 인사를 하고잠들면 근사하지 않을까? 여름밤 집 주변에 달맞이꽃이 달과 함께 비춰주면 무서울 것도 없을 듯했다.
뭔가 나에겐 좋은 것이 오지 않을까? 왜 나만 안될까? 그런 생각들은 사실 타이밍 때문이었을지 모르겠다. 꽃이 피는 시간을 못 맞추고 간절한 마음만으로 찾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원하는 것을 몇 번 놓쳤다고기회가 영영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며칠 빈 손으로 걸었던 길을 달맞이꽃만 찍고 또 찍으며 걸었다. 만남도 때가 있다는 걸 잠시 잊고 있었다. 결국 달맞이꽃 밭을 만난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