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갑상선이 문제입니다

감정은 하루에도 몇 번씩 흔들린다

by 무쌍

매일 아침 일어나 가장 먼저 신지로이드을 먹는다. 10년 전에 갑상선 기능 저하증 판정을 받고 나서 잊지 말고 챙겨야 하는 중요한 일이다. 의사는 매일 비타민을 챙겨 먹는 것이라고 여기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하얀 알약을 먹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오전 시간 11시 전까지는 내 몸의 모든 에너지는 충분하다. 가능하면 밖으로 나가 산책을 하거나 외부 활동을 하려고 한다. 그런데 아이들이 돌아오는 늦은 오후부터는 에너지가 대부분 사라진다. 해가 지고 나면 말할 수 없이 몸은 축 늘어진 기분이 든다. 중요한 일들은 오전에 마쳐야 산다. 저녁이 가까울수록 몸이 천근만근이다.


나의 감정이 하루동안 여러번 널뛰기하고 기분이 지배하는 몸도 같이 반응한다. 아이가 날 아침엔 천사 밤에는 악마가 된다면서 어느 만화에 나오는 대사가 딱 내 모습이라고 말해준 적이 있다.


내 평소의 모습을 떠올려보니 나는 다양하게 변한다. 칭찬에 약해서 기분이 우쭐해지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난다. 반대로 기분이 나빠지는 말을 들으면 꾀 오랫동안 벗어나지도 못한다. 이는 마흔이 넘었지만 여전히 십 대 아이의 마음으로 살면서 아줌마 인척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 일도 안 생겨서 별일이 없는 날도 아무 일이 없는 것이 어색하다. 가만히 누워 있는 것이 영 못 마땅하다. 그런 예민함이 나의 가장 큰 부분이다. 감정이 상하는 것만큼 몸에 생긴 상처는 강하다. 피부가 긁히는 일은 흔한 일이고, 멍이 드는 일도 별일이 아니다. 크게 아팠던 건 아이들 낳을 때 겪은 수술의 후유증 정도였다. 마음보다 몸은 고통에 익숙한 것 같다.


이렇게 갈길을 놓쳐버린 기분이 들면 도서관으로 간다.


읽기의 시간은 잠시 동안 어정쩡한 마음이 분명해지고 안심하라고 위로해주는 것 같다. 도대체 왜 이렇게 혼란스러운 건지 분석하고 알아내고 싶다는 호기심을 덮어 버리는데 도움이 된다.


도서관을 가는 길에는 나를 기다리는 꽃과 나무들이 있다. 집을 나서면 먼저 길가 화단에 꽃들이 나를 반긴다. 누군가 보고 있다는 걸 잘 아는 화초들이 심어져 있다. 야생화들과 다르게 꽃도 이파리들도 비슷한 크기로 싱그럽다.


가을은 꽃과 나뭇잎이 화려하다. 봄과 여름엔 느껴지는 싱그러움과 전혀 다른 색의 화려함을 보여준다.


화단에 페튜니아와 벚꽃나무 낙엽


그리고 뒷산에는 아카시나무와 팥배나무 신갈나무가 빽빽하다. 거의 모든 나무가 낙엽으로 떨어져 가고 있다. 얼마 전까지 피어있던 벌개미취는 몇 송이 남았고, 좀작살나무는 보라색 구슬 같은 열매를 만들었다.


산수유는 초록 이파리가 갈색 무늬를 하고 붉은 열매는 완전히 익어 간다. 빨간 열매를 올려다볼 때면 방금 전까지 내가 무슨 걱정을 하고 있었는지 어떤 기분으로 우울했는지 사라져 버린다. 잠깐 뭐가 문제였지?라고 나에게 묻는다.


도서관 입구에 단풍나무 두 그루가 빨간 불을 켠 것 같다. 문득 그 앞에서 게을러져 책을 읽지 않았음을 인정한다. 단풍나무에 불이 들어오면 마음공부를 시작해야 한다. 고요한 시간을 만들고 글을 쓸 시간이 왔다.


봄부터 여름을 지나 가을까지 꽃을 쫓아다니던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 단풍나무처럼 겨울 준비를 해야 한다. 자연의 존재들이 결실의 가을을 맞이하고 있으니 나도 그 시간에 맞추어야 한다.


도서관 입구 단풍나무


도서관을 들어가며 발열체크를 하고 QR코드를 찍는다. 마스크 없이는 입장을 못하고 손소독제를 바른다. 세상은 바뀌었지만 서가에 꽂힌 책들은 세월을 그대로 담고 있다. 마스크 뒤로 책 냄새가 오래전 외할머니가 잘 삶아진 밤을 잘라 스푼으로 먹여주셨던 날을 떠오르게 한다. 책들은 외할머니 손처럼 주름진 피부색들이다. 오늘은 어떤 책을 골라 집으로 데려갈지 고른다. 도서관 안에서의 모든 시간은 아주 느리게 간다.

신간 코너에서 책 3권을 고르고 왔다.


화가들의 정원


소로의 일기(전성기 편)


당신은 당신의 삶을 바꾸어야 한다(라이너 마리아 릴케)


화가들의 정원은 정원을 갖고 싶은 욕구를 달래기 위한 책이었고, 존경하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 작가의 일기장 속에 가장 빛나던 전성기를 느끼고 싶었다.


독일의 대시인 릴케가 삶에 대해서 쓴 산문 글은 책 속에서 장미꽃에 대한 묘사가 갖고 싶어서였다.


좋았다 나빴다 하는 변화무쌍한 나의 감정들을 달래는 완벽한 약은 책이다. 이렇게 손쉽게 책으로 감정을 다독이고 재미를 얻을 수 있으니 너무 쉽게 사는 건 아닌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작가들의 글 속에서 느껴지는 그들의 지독한 고독도 충분히 위로가 된다.



그런데 정말 몸이 지치고 걷기 조차 힘들어지면 빈 노트가 좋다. 한꺼번에 여러 개를 쓰기 때문에 보이는 노트에 일기를 쓰듯 하나씩 써 내려간다.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을 일기장이니 날 것 그대로 쓴다. 가족들은 나의 휘갈긴 글씨를 읽지 못하고 막내는 아직 학교를 다니지 않아서 한글이 서툴다. 그래서 맘 놓고 쓰고 있다. 노트에 손글씨를 쓸 때는 솔직하게 나에게 직접 말하는 시간이다. 쓰고 나면 정말 내가 왜 그런지 속사정이 보이고 비로소 내가 어떤 기분인지 어떤 것을 뱉어내고 있는지 알게 된다. 글에 감정을 드러낼수록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설령 그 속에 나는 냉소적인지 몰라도 속마음을 확인하며 스스로를 인정하게 되었다. 적어도 무엇이 날 괴롭히는지 찾아낼 수 있다.

그런 후에 다시 다짐을 한다. 여전히 갑상선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무리하지 말아야 한다. 중랑천을 따라 거닐고 싶지만 몸이 아프면 그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갑상선이 고장 나고 배운건 호르몬제의 효과는 세상을 존재하게 할 만큼 강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낮잠을 자는 것이 내 몸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 것을 갖기 위해서 가장 먼저 나를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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