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추석날엔 덜 익은 초록색 풋귤이 차례상에 올라갔다.햇곡식과 햇과일이 올려지는 추석 명절 차례상엔 감귤도 빠질 수 없기 때문이다. 아빠는 껍질은 초록색이지만 크기가 큰 것을 골라 따오셨다. 차례를 지내고 나면 다들 그 초록 귤을 먹으려고 부엌 입구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사과와 배, 감도 맛이 좋았지만, 귤만큼은 햇과일 중에 으뜸으로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제주에서도 수확철이 아닌 귤은 귀한 과일이었다.
분명 겉은 초록색이지만 껍질을 까고 나면 속이 연한 주황색 과육은 새콤하고 맛이 좋았다. 그 상큼한 과육 속엔 두어 달 뒤면 수확할 즐거운 미래가 들어 있었다. 일가친척 대부분은 감귤농사를 하니 어른들은 귤밭 이야기가 추석 인사였다. 나무에 달린 귤이 곧 익어 가길 바라며, 작년 생산량과 비교하며, 그 해의 귤농사 성적을 예측하셨다. 부모님도 귤농사를 평생 하셨으니, 수확에 대한 기대 반 설렘 반으로 겸손한 대답을 하셨다. 그런데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따로 있었는데 바로 추석날 차례상에 올려진 풋귤의 맛이었다.
풋귤은 단 맛이 아직 들지 않았지만, 크기가 어느 정도 커진 귤은 상큼한 산미를 맛볼 수 있다. 그 맛이 알맞게 느껴져야 단맛이 들어도 맛 좋은 귤을 기대할 수 있었다. 추석날의 풋귤 맛이 시지 않고 싱겁거나, 레몬처럼 너무 시기만 하면 새콤달콤한 맛을 내는 귤이 되지 못했다. 차례상에 올려졌던 풋귤 맛은 아빠의 귤농사의 첫 시험의성적표였다.
지금은 사계절 다른 종류의 귤이 수확되고, 귤밭 노지재배 말고도 비닐하우스나 비가림을 해서 재배하는 방법이 다양하지만, 노지 수확만이 있던 시절이 있었다.
귤밭에 노지 감귤은 여름 더위와 태풍을 겪으며, 가지에 단단히 달린 채 가을 동안 볕을 받으며 단맛이 들게 된다. 그리고 11월부터 귤밭엔 연둣빛이 도는 노지 감귤 수확이 시작되었다.자연이 주는 대로 귤이 익어가는 일은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행복한 미래를 보장해줬었다.
나는 귤밭 농사는 관심이 없었다. 겨울 방학을 내 맘대로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11월부터 12월까지 귤 따는 인부를 구하는 전화는 시끄럽게 울렸다. 기말고사만 끝나면 주말부터 귤밭에 불려 다녔다. 그러니 추석날 어른들 말은 귀담아듣지 않았다. 귤 농사가 풍년이 아니어도 어차피 농사를 도와야 하는 일은 당연지사였기 때문이다. 대신 차례상에 올리려고 따온 풋귤 이 먹고 싶었다. 하지만 차례상에 올릴 귤은 넘볼 수 없었다. 대신 상에 올릴 귤 말고, 나를 위한 귤을 기다렸다. 난 초록색 귤을 좋아했다.
아빠가 기억 못 할까 봐 엄마는 "상에 올릴 거 따옵써!"라며 농장에 가는 아빠에게 당부했다. 그럼 기다렸다는 듯 "아빠 내 껏도 몇 개 부탁해요!" 라며 진한 초록색 귤을 따오길 기다렸다. 차례상에 올리는 귤을 크고 좋은 상태라면, 내것은 더 작은 초록색에 겉껍질은 점박이가 있거나, 모양이 틀어진 것이었다. 크기는 딱 요즘 라임만 했고, 딱딱하고 묵직했다. 게다가 손으로 까기 어려울 정도로 껍질은 탱클 거렸다. 덜 익은 귤과 아직 크고 있는 귤이 반반 섞인 듯한 초록색이었다.
아빠는 차례상에 올려진 귤을 소쿠리에 조심이 들고 오셨고, 내 귤은 한 손으로 호주머니 속에서 꺼내셨다. 일 년을 기다린 귤은 향기가 진동하며 내 기분이 날아갈 듯해줬다. 눈이 저절로 감기게 하는 시큼한 맛을 아무도 좋아하지 않으니 혼자 독차지했다. 물론 신맛이 대부분이었지만, 내 입엔 분명 익어가는 귤 맛을 맛볼 수 있었다.
내가 좋아했던 귤이 요즘은 청귤이라고 불리며 청을 담가 먹는다고 하니, 새삼 세상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청귤로 수확하기 좋은 상품도 개발되고 있으니, 귤 농사의 범주도 다양해진 듯하다. 추석이 다가오자 밭에서 딴 초록색 귤을 먹고 싶었다.
요즘 마트엔비닐하우스에서 자란 귤을 판다. 초록색 빛을 한 귤이 거의없다. 초록빛을 한 햇과일은 연두색 샤인 머스캣 같은 달콤한 과일 색인 듯했다. 사람들은 덜 익은 초록색 귤은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예전처럼 추석 명절에 초록색 귤을 먹을 수는 없다. 따다 주는 아빠도 없고 과수원도 없으니 말이다.
마트에서 가장 덜 익은 귤을 골라 사 왔다. 초록색 귤을 먹으며, 예전처럼 명절 기분을 느껴보고 싶었나 보다. 지금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신 어른들이 염색하지 않아도 까만 머리였던, 오래전으로 잠시 떠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방금 사온 귤은 아주 달고 신맛은 거의 없는 귤이지만, 한가위 보름달처럼 둥근 모양은 예전 먹던 초록 귤과 닮은 듯했다. 차례상에 올려졌던 귤을 먹을 수 있는 어른들처럼, 나도 어른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계절과 땅이 하는 대로 익어가는 귤 맛을 기억하는 건, 어린 시절 나를 그리워해서 인듯 했다.
고향 추석 차례상 위에 올려질 노지 감귤 맛은 지금도 비슷할까? 모든 것이 변하는데 풋귤 대신 잘 익은 하우스 귤이 올려질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