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부터 한잔 마셔야 했다. 주말을 맞은 부엌은 하루 종일 부산한데 할 일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어제 손질해 놓은 쪽파 한 단을 보며 커피가 식길 기다렸다.절여진 쪽파에 양념을 버무리기만 하면 되었다. 김치에 넣을 찹쌀풀을 차갑게 식혀야 하니, 커피를 오래오래 마시며, 최대한 미뤄볼 참이었다. 시작 못하고 미루던 마음은 아이의 일기장 숙제를 독촉할 때 최고조가 되었다. 그런데 짜증은 어제부터 나있었고, 쪽파를 다듬기 시작할 때부터였다.
흙을 털고 뭉쳐진 뿌리를 하나씩 떼어냈다. 한 손에는 뿌리 달린 쪽파가 다른 한 손에도 뿌리 달린 쪽파가 있었다. 방금 밭에서 뽑은 듯 쪽파는 날 것 그대로였다. 흙이 잔뜩 붙은 뿌리를 칼로 잘라 내고, 바깥을 덮고 있는 잎을 벗겨내면 뽀얗게 흰 속살이 나온다. 이 작업을 계속 반복하다 보니 깐 쪽파를 살 걸 싶기도 했다. 부엌을 보며 아이들은 코를 잡고 맵다고 한소리씩 했다.
쪽파 다듬기는 참 성가시다. 이런 기분은 마늘 까는 데도 비슷하게 찾아오지만, 쪽파 다듬기가 더 견디기 힘들다. 마트 진열장에 곱게 다듬어진 쪽파 묶음을 보면, 고마운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내 기억 속에 "파김치 먹으려면 파 다듬어!" 이 소리가 맴돌았나 보다. 흙 뭍은 쪽파를 볼 때마다 떠올랐다. 이젠 지워도 될 것을 참 오래도 간직했나 보다.
강원도가 시댁인 그녀는 200포기씩 김장하는 며느리였다. 이 맘 때가 되면 얼굴이 반쪽이 되어 돌아왔다. 하루 종일 김치랑 있다 보니 김치공장을 다녀온 기분이라고 했다. 4남매 김치를 오롯이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한다니 한숨이 섞여 나왔다. 아마도 몸이 지친 것보다는 마음이 더 착잡했을 듯했다. 그녀는 작심한 듯 시어머니에게 이젠 연로하시니 배추김치를 20포기만 해서 조금씩 보내고, 주변에 나누는 것도 줄이자고 설득했다. 그 말을 들으신 시어머니는 배추밭에 배추는 조금 남겨두고 내다 팔겠다고 하시면서, 대신 배추 팔러 가자고 하셨단다. 그 시어머니는 다음 해 수술을 하셔서 결국 김장을 못하게 되셨다. 어쩌면 우리는 부모님이 해오던 걸 꼭 대물림해야 한다고 그게 효도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가끔은 어린 내가 부모님이 하라는 대로가 아니라 그 반대로 했으면 어땠을까 싶어 진다.
미하엘 보르트의 책 <부모를 실망시키는 기술> 서두엔 이런 글이 쓰여 있다.
부모와의 관계에서 평화를 발견하는 사람만이 내적으로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 자유롭다는 것은 자신이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데 있어 부모에게 종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을 부모의 바람과 기대에 맞추려고 하거나, 반대로 방향 하기만 한다면 나는 어떠한 결정의 순간에도 늘 부모와 얽매여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아직 자신의 고유한 목소리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부모님이 실망할까 봐 꺼내지 못한 말이지만, 용기라는 것은 바로 이럴 때 쓰는 것인가 보다. 늦었지만 나도 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쪽파를 큰 단으로 서너 개를 사던 내가 이번엔 딱 한단만 사들고 왔다. 한번 고생하고 두고두고 먹는 것 말고, 조금 수고하고 조금 먹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래서일까? 성가신 파김치가 딱 알맞게 소중해진 기분이다. 먹다 보면 겨울 동안 한두 번은 더 담가야 하겠지만 언제든 할 수 있을 듯하다.
언젠가는 깐쪽파를 살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파김치를 맛있게 하는 맛집을 알게 되면 가끔은 사다 먹을 날도 올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성가신 파김치가 아니라 그냥 파김치였다. 이제야 나는 파김치를 맛있게 먹을 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