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엄마노트

좋아!고양이처럼

8월 31일

by 무쌍

8월의 마지막 날이다.

한동안 다른 꽃밭을 다니느라 찾아가지 않은 숲엔 어디를 둘러봐도 나팔꽃 덩굴이 자리를 차지했다. 하늘색 꽃 분홍꽃, 넓은 잎 파란색, 진한 보라색 나팔꽃이 만발해졌다. 그 틈에 유홍초, 메꽃, 애기나팔꽃이 피기 시작했다.


청일점으로 핀 닭의장풀꽃은 나비처럼 양쪽 날개를 펼치고 파란 날갯짓을 했다. 얼핏 보기엔 초록색뿐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비를 향해 박수를 치는 초록손 같았다.


나비들은 때를 기다린 듯 명랑한 몸짓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야생화들이 한꺼번에 선물상자처럼 쏟아져 어느 것부터 찍어야 할지 결정 못하고 있었다.


작년보다는 덜 피긴 했어도 꽃밭엔 나비가 춤추고 눈부신 태양이 비추는 대로 꽃잎은 얼굴을 내밀었다.


이곳에서 처음 발견했던 흰색 나팔꽃도 다시 피었는데 깊숙한 풀숲에 숨어서 사진을 찍는 일은 포기해야 했다. 발견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했지만 다음엔 볼 기회가 또 오려나 장담할 수 없었다. 매년 달라지는 풍경을 만드는 변화무쌍한 자연이지만, 점점 야생의 구역은 훼손되고 있으니 말이다.


<나도 모르게 생각한 생각들> 요시타케 신스케 지음


글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무척 부럽다. 게다가 글솜씨가 돋보이는 작가들은 정말 모든 걸 다 가진 부자 같다. 요시타케 신스케의 여러 가지 책들을 읽었지만 <나도 모르게 생각한 생각들>은 처음이었다. 이미 여러 권의 책을 출간한 작가라니 그것도 참 대단했다.

책장을 넘기다가 지금 내게 필요한 문장들을 발견했다.

행복이란 것의 의미를 요모조모 생각해 보다가, 뭔가가 명료해질 때, 뭔가를 결정한 순간이 가장 기쁘지 않을까, 하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오늘은 중화냉면을 먹어야지!라고 결정했을 때, 그게 가장 기분이 고조되지 않나요?
저에게 행복이란 해야 할 일이 명료해지는 것입니다.
"좋아! 결정했어!" 하고 나직 이외 치는, 그런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오랫동안 기다렸다. 9월 1일이 되면 소속 없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출근 시간에 시달리는 일이 좋았지만, 곧 시들해졌다. 이유는 단 하나! 사람이었다.


매번 약속시간을 어겼고, 자꾸 말을 바꾸는 사람이었다.

다른 파트타임일을 하면서도 일을 할 수 있었는데, 뭔지 모르게 불편했다. 일은 재미있는데, 나머지가 어색했다.


비슷한 일을 구할 수 있으려나 걱정은 되었고, 버티지 못한 패배자가 된 듯 초라했다. 선택이 잘못일 수도 있지만 나와 맞지 않은 것을 찾아낸 것일 수도 있었다.


좋아! 그건 무리였어.
할 수 있는 것이 줄어들어도 괜찮아.
이것과 이것만 할 수 있어도 좋아.


요시다케가 말한 것처럼 산뜻한 기분이 들었다. 결정만 했을 뿐인데 말이다. 그동안 이것도 저것도 결정되지 않은 상태가 나를 불안하게 만든 걸 알게 되었다.

마음 한구석, 하고 싶은데 미루기만 한 일들이 떠올랐다. 시 해보고 싶었다. 선택을 하고나니 다른 기회가 덩달아 찾아졌다.



넓은 잔디공원을 고양이가 독차지 했다(2023.08.31)


초록 잔디공원을 지나오는데 고양이를 만났다. 요즘 나비를 잡으려고 점프를 하는 길고양이를 여러 번 보았다. 왠지 그런 고양이가 미워서 나비가 잡히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끝내 고양이가 성공했는지는 모르겠다. 내 마음과는 다르게 포기를 모르는 양이들은 최선을 다해서 힘차게 점프를 하기 때문이다.


나비를 잡아야지 하는 순간, 고양이도 눈이 커지고 긴장이 되면서 상기된 모습이 되었다. 나비는 놓쳤지만 고양이는 포기하지 않는다. 잔디공원을 독차지하듯 엎드린 고양이는 무척 편안해 보였다. 무심하고 시크한 고양이의 특징이 그대로 풍겼다. 나비를 잡을 말까 고민하는 상태가 아니라, 잡을 거야 하고 결정한 상태였다. 나비가 오든 안 오든 고양이는 언제까지나 기다릴 태세였다.


나비를 못 잡았지만 가만히 잔디밭에 엎드린 고양이처럼 나도 웅크리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완성되고 '끝'이라는 단어를 새겨 넣을 때까지 멈추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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